[구월환의 시사저격] 역사는 더디게라도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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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환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08 08:07:00

오늘날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 병폐 코드는 ‘탐욕’이다. 사회 도처에서 자제되지 않고 통제도 되지 않는 탐욕이란 이름의 괴물이 안하무인으로 설치고 있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주도한 ‘특권 폐지 국민운동’에 정치권은 지극히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고위공직자 출신의 전관예우 폐지에 찬동한 의원은 7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정치인, 그들은 인기가 내려가면 ‘혁신’ 팻말을 들었다가 국민이 한눈을 팔면 금세 팻말을 내린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그들은 호강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보수와 대우를 받는다. 연봉만 1억5000만 원이고 국회의원 1명을 유지하는 데 연간 7억 원 이상의 혈세가 들어간다. 그런데도 국회의원이면 민주국가에서 꽃 같은 존재요 최고의 영광인데 무엇이 아쉬워 주식투자·코인투자 같은 데에 눈독을 들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라는 직책상 아무 떡이나 먹어서는 안 되는 자리다. 그들은 국익과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영리 업무를 해서도 안 된다. 이런 고귀한 의무를 지녔다는 것이 보통 사람과 구별되는 국회의원의 특수성이며 또한 그들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지금 야당의원들이 국정 실패를 위해 고사 지내듯이 정부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도 애국적 동기에서 나온 행동은 아닌 것 같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만 하더라도 국내·외 전문기관의 과학적 검증 절차가 진행 중인데도 서둘러 공포감 조성에 열을 올리는 것은 권력 중독 수준의 탐욕 때문이다. 과학 문제를 정치로 풀려는 시도 자체가 불순한 것이다. 모든 문제를 그런 식으로, 권력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불완전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머지않아 폐차 수준으로 망가질 것이다.

5·18 가짜유공자 문제도 탐욕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사실 민주화 유공자라면 보상금 같은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그 뜻이 더 빛날 것이다. 가짜유공자 문제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이슈임에도 소문만 무성하다가 최근에 스카이데일리가 4346명 전체 명단을 입수하여 단계적으로 그 진상을 공개하고 있어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미 언론계에선 181명 중 135명인 74%, 문화예술계에선 179명 중 160명인 89%가 가짜로 판명됐다. 다음에는 정치계 유공자(총 310명) 중 가짜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 파장이 대단할 것이다. 이 희대의 가짜 소동은 개인의 자제력과 사회적 제동장치를 무력화시킨 탐욕의 산물이다. 유공자가 되어 보상금 등 갖가지 특혜를 누려 보자는 욕심과 충동이 양심과 상식을 눌러 버린 것이다.

진즉부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가짜유공자 문제가 여기저기서 거론되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정부나 정치권·언론계에서는 그 문제를 애써 외면하거나 거론하는 것 자체를 기피해 왔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이런 국민적 의혹을 수십 년간이나 암흑에 묻어 놓고 쉬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고장 나 있다는 방증이다. 민주주의는 음지나 뒷골목에서 행해지는 비리와 불법을 양지로 끌어내 시정하는 강력한 교정력을 갖고 있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어떤 부당한 특권이나 성역도 생존하기 어렵다.

우리 시대의 사회 이슈로 부각된 노조의 특권화 현상이나 시민단체 보조금 비리도 과도한 욕심의 산물이다. 그동안 노동자의 소득이나 처우가 눈부실 정도로 달라졌고 사회적 파워도 법위에 군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해졌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쳐야 한다. 걸핏하면 다수의 위력으로 겁을 주려고 하는데 이것이 통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시민단체의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 314억 원의 부정·비리가 적발됐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간 시민단체들의 무분별한 탐욕적 행태로 보아 실제로는 그 이상일 것이다. 문재인정부 5년간 매년 4000억 원씩 보조금이 늘어났다는데 뉴스를 훑다 보면 그 돈이 주로 좌파 쪽에 가서 지금 우파 정권 흔들기에 쓰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정치 중립을 내세우던 선거관리위원회 사태도 제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한 탐욕의 결말을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우리 국민은 그간 선관위의 독립성을 존중해 왔으나 그들은 선관위에 제 자식들 심기에 골몰하고 허술한 선거관리를 하는 등 탈선을 자행하고 국민을 배신했다.

흔히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욕망의 포로에게는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역사는 더디게라도 발전한다는 법칙엔 예외가 없다. 그러므로 국회의원 특권이나 ‘5·18’이나 ‘세월호’ 부조리, 노조나 선관위의 안하무인격 행세 등도 발전하는 역사의 힘을 결코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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