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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불을 통해서만 대장장이는 쇠를 다스릴 수 있다/오직 불을 통해서만 예술가는 용광로에서 정제한 순수한 황금을 얻을 수 있다/불사조는 먼저 불에 타지 않고는 불사조가 될 수 없다/(중략) 불은 틀림없이 나를 하늘 위로 데려다 줄 것이다.”(미켈란젤로의 시 59번 중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자연 일부이므로 인간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철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만물의 근본 원소로 불·물·공기·원자 등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불은 인류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근원 중 하나였다. 불이 없다면 인류는 음식을 익힐 수도, 역병을 쫓을 수도, 쇠를 다스릴 수도, 금을 정제할 수도 없었다. 오래전 철학자들이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과도 같은 존재를 예리한 관찰력으로 꿰뚫어 본 셈이다.
그러나 최근 지구 곳곳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인류에게 가히 재앙이었다. 올해 캐나다는 전역에서 약 1000건의 산불이 발생해 역대 최대 규모인 14만㎢(한반도 면적의 약 3분의 2)가 불탔다. 17만 명이 대피했으나 여전히 진화에 애를 먹고 있다.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은 최근 100년간 가장 큰 산불이 발생해 2주째 이어지고 있으며 실종자 수가 850명으로 늘었다.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 등 남유럽 역시 40℃를 넘는 폭염과 함께 대형 산불이 일어나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요즘 산불은 평소에 시나브로 일어나는 자연 현상으로 여기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올여름을 전후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고 대체로 자연발화로 추정(스페인령 테네리페섬 산불은 방화 의심)되거나 발화 원인을 알기 어려우며 수개월이 걸려도 진화에 애를 먹기 때문이다. 기후·환경 위험론이 과장됐을지언정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새삼스레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결과인 것 같아 섬뜩하기만 하다.
학계에서도 최근 세계적으로 잇따르는 산불에 관해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다만 인간이 초래한 지구의 기온 상승이 산불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를 높였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화재가 나무와 토양에 저장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지구 온난화에 기여해 화재 가능성을 높이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0년 한 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16년치 캘리포니아주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무력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2027년 안에 지구 평균 기온이 66%의 확률로 ‘1.5℃ 기준점’을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인간 활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과 올해 말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엘니뇨로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어서다. ‘1.5°C 기준점’이란 산업화로 화석연료 배출량이 실제로 증가하기 시작하기 이전인 19세기 후반보다 전 세계 평균 기온이 1.5°C 더 올라간다는 의미다. 산불 규모가 커지면 이 기준점을 넘길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산불 현장에는 마치 흑백사진 속 영상처럼 시커먼 건물 잔해와 회색빛 나무 재만 남았다. 하지만 여전히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산과 마을들, 그리고 불길을 잡으려고 밤낮으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애타는 마음으로 희생자와 생존자를 찾는 구조대원과 가족들은 현재 진행형(컬러사진)이다. 이런 불은 더 이상 인류에게 선물일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가공할 현상에 관해 아직 많은 것을 모른다. 위험 수위에 이르기까지 늦지 않았다면, 아니 위험수위에 이르는 시점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각 개인은 물론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나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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