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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올해 6월 하반기 경제정책 발표의 일환으로 ‘도시·주거환경 정비계획 수립 지침’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이 개정안에 “시장·군수 등이 정비계획을 수립할 때 해당 정비사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거나 기반시설에 대한 과도한 기부채납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여전히 ‘전가의 보도’처럼 민간주택건설 과정에서 인·허가를 무기로 과도한 기부채납을 강요하고 있다. 기부채납은 쉽게 설명하면 건물이나 주택단지가 들어설 때 민간이 학교·체육시설·공원·주차장 등의 부지를 매입해 건설 비용까지 조달해 가며 땅과 시설물을 지자체에 무상으로 이전해 주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지자체가 공동주택단지 같은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해당 사업자에게 적정하고 합리적인 검증 과정을 거치거나 주변 여건을 꼼꼼히 따져 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 않은 무리한 기부채납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정부의 과도한 기부채납 금지 지침은 한마디로 지자체가 민간사업자를 상대로 더 이상 인·허가권을 빌미로 갑질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동안 과도한 기부채납으로 파생된 민간의 사업 비용은 고스란히 공사비 상승으로 직결됐다. 또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부추겼고 지자체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먼지처럼 떠밀려 가야 했던 애꿏은 피해자들을 양산해 냈다.
과도한 기부채납의 피해가 비단 민간 건설업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개발 명목으로 설립된 주택조합의 경우 민간 건설업체가 직접 분양하는 공동주택단지들과 달리 지자체의 나몰라라식의 갑질과 등살에 시달리다 사업이 좌초될 경우 재산상의 손실을 입고 파산지경으로 내몰린 사례도 허다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원활한 주택공급을 위해 정비사업 시행·운영과 관련된 기본계획을 세우면서 그동안 지속되어 온 지자체의 악습과 폐단을 끊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결과 주문한 것이 과도한 기부채납 금지였다.
정부가 이러한 지침을 발표했는데도 지자체들의 안일무사주의에 빠진 행정은 바뀌지 않고 있다. 시민을 위한 서비스 행정에는 관심 조차도 없다. 그러면서 지금도 반강제로 수십억 원 내지 수백억 원의 땅과 시설물을 기부채납이라는 명목에 무상으로 받아 챙기고 있는 형태들이 여전하다. 정부는 지자체가 따라줄 것을 바라며 권고로만 끝내선 안된다. 비상식적인 엉터리 행정이 낳은 기부채납을 중단시킬 실무 차원의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이미 올해 하반기 중 약 3만8천 호의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을 실시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15만 호 규모의 신규 공공주택 택지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부동산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건설업계 투자에 지원될 PF자금 확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날밤을 지새며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정작 지자체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식이라면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필자는 합법적인 행정절차와 진행을 바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울부짖으며 하소연하는 수도권 주민들을 만나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서 각 지자체에서 내세우는 엇비슷한 ‘시민 중심의 행정’이라는 빛바랜 슬로건이 얼마나 천박한 허울에 지나지 않는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0여 년간 수도권 신도시들을 살펴보면 정부가 택지지구 지정과 신규 후보지를 발표하고 난 뒤 개발 혜택은 대부분은 지자체로 돌아갔다. 도시개발로 신도시가 들어서고 빈 땅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 지자체의 공공재산은 불어났다. 반면 민간 건설업자와 주민들은 과도한 기부채납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삶을 지탱해 가는 것조차 팍팍한 서민들의 소규모 아파트를 짓는 데에도 교육청에선 교실과 학교를 지어 달라 하고, 지자체에선 공원과 체육시설을 지어 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게 당연한 일이 돼 버렸다.
노른자위 땅에 짓는 아파트라면 몰라도 도시의 변두리 자투리 땅에 돈 없는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수십 년 간 이자와 원금을 감당해야 할 아파트 단지 마다 강제로 기부채납을 요구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무리한 행정 권한을 앞세워 시민 위에 군림하는 지자체들이 있다. 행정 갑질도 적당히 해야 할 것 아닌가.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서 과도한 기부채납을 금지하는 지침을 발표했을까.
부동산 개발이 이뤄지는 주변으로는 토지와 환경, 조경과 도로 교통망에 이르기까지 현행법상 충분할 만큼 촘촘한 규제와 심의가 뒤따른다. 그 행정적 심사를 거쳤는데도 법으로 규정된 지자체의 인·허가 권한에 가로막혀 부담하지 않아도 될 비용이 입주민들에게 전가되는 일이 다반사다. 힘 없는 서민들이 지자체에 기부채납 못 하겠다고 반발했다가 내 집 마련의 꿈마저 날아가 버릴까 노심초사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시개발로 수용되는 택지는 주택단지로 착공되기 전에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여러 심의 단계를 거치는데 단계별로 인가와 허가를 거치는 동안 각종 세금이 의무적으로 부과된다. 합법적인 행정 과정을 모두 거쳤는데도 공동주택지 인근과 동떨어지거나 주민들에게 불편만 끼치는 시설물, 입주할 주민들이 사용할 수 없는 먼 거리에 공영주차장을 지어 달라는 식의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는 근절돼야 한다.
공공기여라는 명목으로 신규 택지에 건설된 아파트 입주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는 것도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 이제는 올바른 행정을 보여 줘야 할 때가 됐다. 외국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부채납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지자체가 아직도 수두룩하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이참에 애매모호한 기부채납의 기준도 뜯어고쳐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의 횡포로 입게 되는 민간의 피해와 그 원성이 모두 어디로 가겠는가. 정부는 아직도 행정 권한을 앞세워 갑질하는 지자체를 이대로 내버려 둬선 안 된다. 과도한 기부채납을 단속할 정부 차원의 제도와 법률안을 정비할 때가 됐다. 지금 이 시점에도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는 상식 밖의 지자체가 있다면 인허가 갑질 행정을 당장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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