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63] 기억하는 모든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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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14 06:24:48

학교에 왜 안 나오냐는 질문이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인 줄 몰랐다. 태주의 자취방을 나온 승연은 버스가 끊긴 것을 알았다.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가족이 생각났다. 뭐라고 변명할까. 시위하지 말라고 당부하던 아버지가 연락되지 않는 딸을 걱정하고 있을 게 뻔했다.

승연은 학생회관 문이 닫힌 것을 다시 확인하곤 근처 공중전화가 있을 만한 건물을 찾았다. 학교 본관 몇 군데 불이 켜져 있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마을버스를 타려면 정문 앞에서 족히 1km는 걸어야 했다. 승연이 태주 뒤를 따라 이면 도로 위를 걷고 있을 때 뒤에서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며 경적을 울렸다.

“너희들 지금 어디 가는 거니?” 교목이었다. 둘은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활짝 웃었다. 평소 설교가 지루해 허가된 낮잠 시간이라며 꾸벅꾸벅 졸았던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버스가 끊겨서 못 가고 있었어요. 걸어가려니 깜깜해서 무서웠는데. 속으로 하나님 마차를 보내 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승연은 없는 말까지 지어내며 길 잃은 어린 양인양 행동했다. 교목이 빨리 차에 오르라고 손짓하며 뒷문을 열어 주었다. 태주는 앞자리에, 승연은 뒷자리에 올랐다.

교목은 다짜고짜 건대 소식 들은 거 없냐, 물었다. 하마터면 승연이 우리도 거기에 있다가 학교로 피신했어요! 라고 말할 뻔했는데 태주가 먼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교목은 태주와 승연이 학교에서 나왔기 때문에 서울 시위대에 합류하지 않은 걸로 생각했다.

교목은 낮에 있었던 건대 소식을 뉴스 통해서 들은 얘기를 해 줬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가 있는지 부상자는 없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내일 학교 이사회가 소집될 거라면서 학생들의 상황을 알아보는 게 급선무라면서 말끝마다 주여, 이 난국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탄식했다.

교목은 태주가 왜 건대에 안 갔는지 궁금했는지 가만, 김태주 너는 건대에 안 갔다고? 따지듯 물었다. 교목은 태주가 누군지 그제야 생각난 듯했다. “네, 안 갔어요. 내일 아침 일찍 가 보려고요. 사실은 들어가려 했는데 이미 경찰이 포위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오지 말라고. 저는 어차피 밖에서….” 태주는 말끝을 흐렸다. 교목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차 안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거짓말을 들은 사람 사이의 민망함을 나타내는 신호였다. 승연은 민망함에 끼어 있는 자신이 더 민망했다. 교목이 승연에게 왜 이 시간에 김태주랑 같이 있었냐고 물어볼까 봐 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