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 앞에서 2025년 2월26일부터 무기한 단식을 하던 전지영은 3월25일부로 28일 차 단식을 종료했다. 그녀는 2월17일 1차 단식을 시작했으나 이틀 만인 2월18일 수십 명의 경찰에게 끌려나오고 말았다. 북한산을 휘감은 북풍 한설이 아스팔트를 휩쓰는 안국역 사거리에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널부러졌다.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소박한 꿈을 꾸던 그녀가 침묵 속에서 버려질 때 지나는 행인들은 외면했고, 못마땅한 듯 찌푸린 눈길 속에 구겨진 박스처럼 뒹굴었다. 영하 10도, 체감온도 영하 18도를 넘나드는 안국역에 버려진 그녀는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돗자리와 몇 개의 잡동사니와 함께 널부러진 쪽팔림과 부끄러움은 덤이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영원한 재야 고(故)장기표 선생의 문하생인 우일식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록수가 보이는 작은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쫓겨난 지 9일 만에 전지영은 2차 단식투쟁을 위해 해피하우스 조명연 원장과 정창옥 길위의학교 긍정의힘 단장과 함께 침묵의 시위를 이어 갔다. 2월26일,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엄동설한. 종로경찰서에선 돗자리도 깔지 못하게 막았고 이불과 침낭은 물론 베개도 허락하지 않았다. 입고 온 옷과 현수막 한 장만을 이불 삼아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단식 3일째가 되자 눈과 비가 내렸으나 파라솔은 물론 천막조차 치지 못하게 막았다. 경찰은 덮을 비닐조차 못 치게 막아 지나가는 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단식 9일째 그녀는 쓰러졌다. 의사는 “먹지 않으면 죽으니 미음이라도 먹으라”고 권했으나 그녀는 “죽어도 헌재에서 죽겠다”며 거부했다. 그리고 15일째는 물론 19일째와 26일째 쓰러지며 119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다. 단식 27일째.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그녀는 체내 장기의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신의 가호는 희미한 빛으로 다가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으로 계몽된 청년들이 전지영 열사를 살리기 위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살아서 지켜 주시고, 우리 청년들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며. 청년들의 간곡한 호소에 그녀는 눈물로 화답했다. 전지영은 청년들과의 약속을 통해 윤 대통령과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그녀가 단식을 시작할 때 사실 그에겐 어떠한 대책도 없었다. 이름 없는 가난한 시민활동가에 불과한 그녀가 단식기간이 길어진다면 치명적인 후유증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뿐이었다. 사실 28일의 단식으로 그녀는 이미 죽음 직전까지 간 상황이다. 회복해도 1년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치명적인 장기간의 단식이었다.
전지영 열사가 죽음의 단식투쟁을 건강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만든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수십 일 동안 낮과 밤을 지켜 준 이름없는 청년들과 시민들이다.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도와준 시민활동가 김익수 봉사자, 청년 유재명·권준식 봉사자, 김종민 청년과 이름 없는 시민들…. 그녀가 영하의 날씨에 찬물을 먹는 모습을 보고 매일매일 따뜻한 물을 갖다준 아현동의 애국 여성. 그 따뜻한 물은 생명물이었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나쵸엄마 김일옥 교수. 단식 현장과 주변 애국시민들의 열악한 환경을 아시고 도움을 준 이름 없는 변호사님의 나눔과 배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맹진제 선생님의 ‘엄지검지테크닉’으로 꺼져 가는 그녀의 세포와 신경을 되살릴 수 있었다.
무려 20여 일 동안 그녀를 지켜 주며 차디찬 밤을 함께 지새운 박민식 전 보훈부장관의 희생은 칠흑 같은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전지영과 동조단식을 하는 모든 투쟁가들의 건강을 수시로 체크하며 위기를 넘기게 해 준 김진태 원장의 숭고한 의료 행위는 단식 현장에서 꽃핀 가장 소중한 생명의 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이들을 이 자리로 이끌어 모든 것을 베풀며 긴급 호송된 투쟁가들의 병원비를 제공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 김행 전 장관의 손길이었다.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간신 같은 사법부는 철저히 ‘곡판아문(판결로 문재인에게 아부함)’으로 판결했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재명을 2심에서 무죄로 둔갑시킨 최은정·이예슬·정재오 판사. 2025년 3월26일. 문재인정부에서 윤석열정부로 넘어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법부는 ‘종북 주사파’와 ‘친중 매국노’에게 장악당한 채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에게 아부하는 ‘곡판아명’이 횡행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은 이런 ‘곡판아명’을 저지르는 반국가세력을 척결할 구국의 결단이었다. 우리는 기억한다. 자유대한민국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민초의 피와 눈물로 지켜졌다는 것을. 자유대한민국은 이름 모를 선구자들이 목숨으로 지킨 나라다. 우리에겐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2030세대는 계몽되었다. 반국가세력을 척결할 지도자는 윤석열밖에 없다. 그래서 민주당은 사법부와 함께 추악한 검은 카르텔을 이루어 윤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것이다. 2025년 헌법재판소 앞을 지킨 단식투쟁 현장은 반국가세력을 향한 국민저항운동이었고 그 현장은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체제 수호의 성지가 될 것이다.
침묵과 무저항·비폭력 단식 현장의 주인공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시민들과 청년들이다. 독재 정권에 저항한 ‘학생운동’이 ‘국민저항운동’으로 바뀐 것이고, 철저히 조직화되었던 ‘민주화혁명’이 들불처럼 번져 가는 ‘시민혁명’으로 바뀐 것뿐이다. 체제 수호를 위한 하이브리드 이념 전쟁은 시작되었다.
28일 동안의 죽음의 단식으로 목숨을 건 전지영 열사와 애국청년들은 2025년 3월25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무기한 단식 투쟁을 끝내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무기한 철야 노숙’으로 투쟁의 무기를 재장전했다.
자유대한 국민과 청년들이여! 우리는 ‘국민저항운동’을 통해 친중 매국노와 종북 주사파를 뽑아낼 것이며, 자유대한민국 ‘시민혁명’을 통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할 것을 국민 앞에 천명한다. 그 선두에 윤석열 대통령이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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