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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그렇게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아도 인생은 결국 무(無)로 돌아간다. 봄날 호젓한 강가에 나가 앉아 떠올려 보라. 몸으로 살다 간 인간 중에 그 어떤 이가 죽음을 피해 아직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지.”
배우 이재용이 수필집 ‘그날 나는 붓다를 보았다’(불광출판사) 출간을 기념해 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재벌 총수와 이름이 같은 그는 인터넷 검색에서 그에게 밀린다. 그래서 이재용을 본명으로 기억하기보다 영화 ‘친구’의 비정한 조폭 두목 차상곤이나 드라마 ‘야인시대’의 일본 경찰 미와 경부, 드라마 ‘제5공화국’의 정치인 이학봉 등 등장인물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악역 맡다가 깨달은 ‘자타불이’
이처럼 악역을 주로 맡았지만 이재용은 실제로는 자비가 삶의 모토인 불교 신자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그는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언급하며 “남이 나하고 다르지 않다는 기준에서 생각해 보면 안 귀한 사람은 없다”고 털어놨다.
그가 자타불이를 체감한 경로는 연기였다.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희로애락에 공감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연기 경력 40년을 훌쩍 넘긴 이재용은 책에서 “인간은 사람들 속에서 무너지는가 하면 사람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사람에게서 위로받고 또 치유받는다. 돌이켜보니 건너왔던 세상 전부가 사람의 인연으로 엮어진 한 폭 천이었다. 삶은 부모 형제가, 친구 동료가, 선배 스승이, 자식과 아내가 혹은 낯설거나 친숙하거나 했던 모든 이들이 수놓아 준 그 아름다운 인연의 천 위에서 웃고 울고 희로애락의 긴 서사를 펼치다 가는 일이다”고 했다.
끝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긴 서사 속에서 내 삶에 스며든 소중한 인연들과 엮여 견디고 살아 내는 일이 소중하다는 의미다.
또 환경미화원과 청소 노동자를 예로 들면서 “그분들이 안 계신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되겠냐”며 ‘모든 게 한바탕 소동인 인생’에서 그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배우라는 사회적 장식이 판단 방해
그도 짧지 않은 무명 시절을 거치면서 “저도 연예인인데 힘든 순간이 왜 없었겠습니까. 우울증약을 11년씩 먹었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되는데 과연 그럴 힘이 남아 있나 하는 실망에 직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과도한 음주로 몸이 상해 절에서 요양하던 시절도 있었다. 밥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다가 서까래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스님이 혀를 차며 “아직 멀었다. 더 숙여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스님은 훗날 ‘적정(寂靜)’이란 법명을 그에게 내려주는데 그는 삼십 년 세월이 흘러 그 뜻을 겨우 이해했다고 한다. 적정이란 마음(심법)에 번뇌가 없고 몸에 괴로움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말한다.
어려운 시절을 거쳐왔기에 사회적 논란에 휩싸인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도 크다.
이재용은 “배우는 사람들의 거울과 같은 존재다. 사람들은 자신이 못 느끼는 자기를, 배우를 통해 확인한다. 그러나 정작 배우 자신은 ‘사회적 장식’ 때문에 진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그 장식이 사라지고 초라해질 거라는 두려움이 제대로 된 판단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인기나 부·명예는 부질없는 것. 본질적인 측면에서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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