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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속, 샤머니즘 속에서 산다. 우리의 깊고 오랜 종교적 사상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에 관해 잘 모른다. ‘신’이라 하면 곧 서양 기독교의 신을 생각한다. 김동리는 이 무속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였다. 맏형인 범부(凡父) 김정설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본래부터 ‘신’에 가까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작가 성해나의 단편소설 가운데 ‘혼모노’가 있다. ‘혼모노(ほんもの·本物)’는 일본말로 진짜, 진품, 진짜배기, 진실된 것 등을 가리킨다. 작중에 그 반대 뜻을 가진 ‘니세모노(にせもの·僞物)’도 나온다. 참치 요릿집에서나 쓸 것 같은 일본말을 소설 제목으로 척, 내세웠다. 세대로 보면 격세지감이요, 시대·시세로 보면 ‘당돌하다’고 하겠다.
작품 ‘혼모노’는 신 내린 지 삼십 년 된 박수무당(朴手巫堂) 얘기다. ‘박수무당’은 남자 무당이다. 여기서 ‘박수’는 한국 고유어를 음차(音借)한 것 같은데, 튀르크어 계열의 말에 ‘박시(baksi)’라 하면 ‘샤먼’, 곧 무당에 해당하는 존재를 가리킨다고 한다. 유튜브 시대에 이르러 그전에는 쉽게 볼 수 없던 ‘남무(男巫)’인 박수무당을 휴대폰을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다.
‘혼모노’의 주인공 박수무당은 ‘장수할멈’을 ‘몸주신’으로 모시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장수할멈이 길 건너편 갓 신을 받은 ‘신애기’한테 옮겨 가 버린다. 이 대목이 필자한테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보통 ‘몸주신’은 ‘조상신’인 경우가 많다. 통상 이 ‘신’은 한 무당에서 다른 무당으로 옮겨 가지 않는 것으로 안다. ‘조상신’ 아닌 ‘장군신’ ‘삼신할미’ ‘장수할멈’ 등도 있는데, 이 신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간다는 말을 잘 듣지 못했다. ‘잡신’ ‘귀신’이 이 몸, 저 몸 빙의해서 들어가 사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안다.
진짜 ‘신’이 내리는 것을 ‘신내림’ 또는 ‘신어림’이라 한다. 이렇게 얻은 ‘신기’가 세월에 따라 약해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면 이 ‘신’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이 죽으면 천도제를 지내는 것을 보면 이 ‘신’도 하늘에서 오고 하늘로 돌아가 또 다른 영기(靈氣) 있는 자손에게 내려와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소설이야 본디 가상·거짓’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다. 장수할멈이 삼십 년 된 박수에게서 갓 신 받은 신애기한테 옮겨 갔다고 해서, 그러기도 한다는 소수의 주장이 없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 아예 안 될 것은 없다. 다만, 사람들은 그럴 법하지 않으면 실감하지 않으므로 약간의 장치가 더 필요했다고도 생각된다.
그런데, 이 소설에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세대적으로 젊은 무속 이야기를 쓴 것도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겠고, 그보다도 소설 속에서 ‘신기’가 사라져 버린 ‘박수’가 여전히 무당 행세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옮겨 간 ‘장수할멈’이 씌운 ‘신애기’가 살기 어린 눈으로 ‘박수’를 노려보며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이라고 한다. 이제 ‘박수’의 몸에 신은 계시지 않다. 그러나 살아야 하기에, 손님은 받아야 하기에 ‘박수’는 열심히 ‘진짜’ 행세를 한다.
진짜 신을 받은 무당, 신통하신 무당은 작두를 탈 줄 알아야 한다. 시퍼런 칼날 위에서 다치지 않고 춤을 추고 놀 줄 알아야 한다. 가짜에게 그런 연기가 가능할 리 없다. 세인들을 끝까지 속이고 싶겠지만 아뿔싸, 어쩌랴, 신이 안 계신 것을. 본래 자기에게 굿을 의뢰한 황보 의원은 소문이 도는가 싶자 재빨리 ‘신애기’에게 굿판을 옮겨 버렸다. ‘박수’는 이 굿판을 찾아간다. 박수에게는 창피를 당하는 것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이 ‘진짜’라는 걸 만인 앞에 입증해 보이고 싶다.
허나, 어쩌랴. 흉내만 내는 자가 뭘 알겠는가. 시퍼런 작두날 위에서 ‘가짜 박수’는 무사할 수 있을까.
최근 소설들을 보면, 소설도 세상도, 진짜가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처음부터 ‘신’이 내린 것이 아니라면 일의 결말이 어떠하겠는가. 이렇게 ‘혼모노’를 읽다 보면 텍스트의 의미는 확실히 고정된 게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은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부단한 대화의 결과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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