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해 온 모임인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6∼7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다. 미국 주도 서방 중심의 세계질서 대항 내지 견제 성격의 신흥경제체 회의인 브릭스가 중·러 정상 불참으로 역대 가장 김빠진 모임이 될 전망이다. AFP통신은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 등에 한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4일 보도했으나, 공동 대응 수위를 어디까지 조율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얼마나 실행으로 이어질지는 한층 미지수다. 

우크라이나전쟁 문제로 2023년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경우 화상으로나마 얼굴을 비친다. 최근 이스라엘과 무력분쟁을 겪은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역시 참석을 접었다. 의장국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회의 첫날 국제 무역에서 달러화 대체 구상을 옹호했다. “복잡한 문제임을 잘 알지만 새 공식을 찾지 못하면 우린 20세기를 시작했던 방식대로 21세기를 마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FP는 최종 선언문에서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진 않겠지만 미국을 향한 명백한 공격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2001년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네 나라(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를 신흥 경제체강국으로 주목하며 이들 나라 이름 머리글자를 발음하기 편하도록 배열한 게 브릭스였다. 여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합류시켜 2009년 BRICS로 정식 출범했다. 전 세계 인구 40%, 경제력 37%(PPT 기준)를 차지한 비서구권 최대 경체제 연대로 자리매김했으며 중국이 각별히 공을 들여 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중 대결구도 속 중국에게 브릭스의 전략적 의미 증대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중·러 정상의 결석이 당초 이 행사에 기대가 컸을 룰라 대통령에겐 아쉬움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내년 대선에 출마를 위해 이번 브릭스 회의,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개최를 잘 활용해야만 할 처지였다. 더구나 브라질의 교황청가톨릭대(PUC-Rio) 마르타 페르난데스 교수가 짚었듯 “선언문에서 미국이나 트럼프를 거명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중이 무역 협장 중인) 지금 세계 2대 경제대국 사이에 더 이상의 갈등을 야기할 적절한 시기가 아닐 터”이기에 의장국 정상으로서 미국을 몰아세워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상실한 셈이다. 

 

더구나 미국에 어느 정도까지 강경한 자세를 취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입장과 절실함이 제각각이다. 확장을 거듭해 총 11개 회원국을 거느리게 된 브릭스인 만큼 이해관계가 저마다 달라 강력한 합의를 구축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브릭스엔 창립 회원국(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에 이어 작년 에티오피아·이집트·이란·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아르헨티나가 합류했다. 회원국들은 가자전쟁, 이란·이스라엘 전쟁을 둘러싸고 큰 의견 차이를 보인는 것으로 소식통들이 전했다. 

 

이번 행사의 최대 사건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결석일 것이다. 2012년 취임 이래 브릭스 회의에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었던 시 주석이 못 온 것은 최근 측근들 퇴출 속에 무성해진 그의 실각 임박설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장(위구르) 자치구 당서기 마싱루이가 돌연 경질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일대일로 출발점이자 디지털 전체주의 및 소수민족 정책의 시험장인 신장 지역이 시 정권에게 가진 의미는 지대하다. 명문 하얼빈대 공학박사·교수를 거쳐 승승장구한 마싱루이의 퇴출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시진핑의 야심작 유인 달탐사 신저우(神州) 프레젝트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탈(脫)달러화와 독자 금융시스템 구축은 브릭스의 큰 꿈이며, 바로 이 점이 트럼프가 브릭스를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도전으로 간주해 경계하는 이유의 핵심이다. 탈달러화를 위해 지역통화결제 확대(NDB 채권·대출을 각국 통화로 발행), 브릭스 페이(Pay) 등 자체 결제 인프라 확산, 통화 바스켓 논의 등이 이뤄졌다. 또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수장 마크 터커가 이번 리오 회의 관련해 “브릭스플러스(+)는 새로운 경제 블록 재구조화 물결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며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한 남-남, 블록 간 경제 연대가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달러 의존을 완전히 벗어나기엔 아직 높은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 

 

한편 회원국 숫자와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면서 내부 균열요소 또한 강해졌다. 중국·러시아는 “신 다극질서” 속에 강력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며 브릭스를 통해 서방과 견제 구도를 심화하려 하지만 실질 협력에 역사적·이익 충돌 등 내부 긴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작년 9월 파이낸셜타임스(FT)가 중·러 관계를 “용과 곰의 포옹”에 비유하며, 금융·기술·군사 영역에서 상호 이득이 있지만 길게 함께갈 이념 동맹은 아니라고 강조한 전문가 평가를 전한 바 있다. 무엇보다 과거 영토 분쟁에 따른 역사적 불신과 대국 경쟁이 중·러 상호 신뢰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러시아의 대국 욕망’을 자주 꼬집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5일자 FT에 베이징대 펑위쥔(馮玉軍) 교수는 “옛 제국 복원이 러시아의 장기 목표”라며 “정치적·종교적 세계관이 중국과 다르다”고 역설했다. 다만 이는 서방이나 비(非)중화권의 제3자들을 설득시킬 만한 객관적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제국으로서의 역사와 자의식 자체가 중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펑위쥔의 이런 주장은, 알제리 출신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로저 뮤키엘리 ‘광고화 선전의 심리학’(1970) 속 개념을 빌면 “거울 속 비난” “자신의 속내를 타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에 해당한다. “푸틴에게 영감을 준다”는 러시아 이론가 알렉산더 두긴이 저서 ‘지정학의 토대’(1997)에서 중국을 “러시아 남쪽의 가장 위험한 지정학적 이웃”으로 지목했고 “중국은 ‘쪼개져야 한다. 티베트·신장·내몽골·만주 등이 러시아의 ‘안전 지대’로 확보돼야 한다”며 “중국이 카자흐스탄과 동시베리아를 넘보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