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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키워드 _ 변화하는 노동법의 노동자 개념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3-31 01:42:58
▲ 문화평론가 고태경
4차 산업혁명이라는 모토 하에 노동의 형태에도 거대한 변화가 수반되고 있다. 사실 인공지능 기반의 산업혁명 이전에도 노동시장의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의 수는 적게는 160, 많게는 220만을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에 다름없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회사로부터의 지휘 및 감독 여부가 모호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배달노동자, 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된 노동시장 내에서 다시 노동자의 지위를 얻지 못해 사회보험 및 노동3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증가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변화는 어느 정도 시작된 듯하다. 지난해 6월에는 학습지교사의 노동권이, 12월에는 방송연기자들의 노동권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인정되며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이들은 사업장 내에서 지휘를 받으며 월급을 받는 기존의 전형적 노동자의 상은 아니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고용이 확산되며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듯하다. 배달노동자들은 회사 내 업무지휘를 직접 받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업무의 콜을 받으면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소비자들의 고객평가는 회사의 직접적인 업무감독을 대체할 새로운 평가시스템으로 작용한다.
 
방송연기자들의 방송국과의 관계는 기존 직장인들의 업무지휘 관계와는 다른 외양을 맺고 있지만, 실질적인 경제적 구속관계,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의 지휘관계는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못된다. 핵심은 노동의 형태가 사용자와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의 구속관계는 약화되는 반면, 경제적인 의존도는 높아져서 노동법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있다.
 
변화하는 고용의 세계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노동법의 변화는 가시화되는 흐름이다. 독일에는 노동법상의 노동자’(Arbeitnehmer) 개념이 갖는 한계가 지적되며, 기존의 노동자와 자영업자 간의 중간항을 차지할 유사-노동자(arbeitnehmerahnliche Person)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고용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보험을 제공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2017년부터 도입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1980년대 이후 노동시장은 유연화라는 기조 하에 고용형태를 다변화했다. 한 사업장 내에서 거의 유사한 일을 하지만, 소속 회사가 다른 경우가 있으며(파견노동), 1~2년 단위 계약형태로 계약갱신 문제가 기존의 업무평가 이상의 지휘력을 발휘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외주화라는 형태로 기업 간 위계가 설정되는 경우가 한편에 있었는가 하면, 기업 대 기업의 거래 관계가 아니라 기업이 개별 노동자와 관계를 맺으며 고용관계와 기업 간 외주거래의 관계를 모두 피해가는 관행 역시 자리잡곤 했다.
 
최근의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산업세계를 생각해 보자. 대리운전, 가사노동대형서비스, 퀵서비스 등의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은 기존의 고용관계를 완전히 빗겨가며 노동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근로계약 없는 노동자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
  
이들은 근로계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보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대신 플랫폼의 서비스 요청이 이들의 건당 계약을 유지케 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당연히 건당 콜의 고객평가가 이들의 노무 제공의 지속성을 결정할 핵심 요소가 되며, 노무 제공의 지속성이 이들의 경제적 생존의 유일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노동법의 변화 흐름도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유사노동자 개념이 담고 있는 핵심은 이런 것이다. 직접적인 업무 지휘 여부를 떠나 해당 노동자가 특정 기업으로부터 수익의 절반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면 그 기업은 이 노무제공자의 사용자가 된다. 프랑스의 개인활동계좌제라는 새로운 제도 역시 고용의 불안정성을 고려해 실업상태에서도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험을 받을 수 있게 하며, 고위험군의 직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위험군으로의 이직을 위한 직업훈련을 국가에서 지원하도록 설계한 제도다.
 
오늘날의 사회는 익명의 수많은 이들의 노동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노동의 문제는 곧 사회가 그 자신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냐의 문제가 된다. 변화하는 노동의 형태를 받아안을 새로운 제도적 요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해부터 시작된 국내 특수고용노동자 판결의 변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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