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대출지원을 받기 위해 돈을 빌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점수를 낮춰 저신용자가 돼야 정부의 대출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커뮤니티 등에선 신용점수를 낮추는 방법이 활발히 공유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단 대출금을 받기 위해 신용점수를 낮춘 건 추후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지원이 대출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다. 행정명령으로 피해가 누적된 측면이 있는 만큼 언젠가 갚아야 하는 대출 대신 손실보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소상공인·자영업자 사이로 나온다.
저신용자 대출지원 위해 신용점수 낮추는 자영업자들…“대출받기 위해 대출받는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을 중심으로 신용점수를 낮추는 방법이 소상공인·자영업자 사이로 공유되고 있다. 신용점수를 낮추는 방법은 현금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일부러 카드대금을 연체하는 행위 등으로 알려졌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신용점수를 낮추고자 하는 건 저신용 소상공인 대출을 받기 위함이다. 지난 3일부터 중소벤처기업부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저신용 소상공인의 회복을 선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1% 초저금리로 1000만원까지 지원하는 ‘희망대출’을 온라인 신청받고 있다.
지원 대상은 2021년 12월 27일 이후 소상공인방역지원금(100만원)을 지급받은 업체 중 저신용(나이스평가정보 기준 신용점수 744점 이하, 구 6등급 이하) 소상공인이다.
이런 만큼 신용점수가 744점보다 높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중신용 대상 대출 등을 기다려야 한다. 비교적 신용점수가 높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인위적으로 신용점수를 끌어내리려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현금서비스 등을 받아 신용점수를 낮췄다는 자영업자 이현우(가명) 씨는 “신용점수가 기준선인 744점보다 애매하게 높은 상태인데 이러다가 저신용 대출, 중신용 대출 둘 다 못 받는 건 아닌가 걱정돼서 아예 깎았다”며 “정상적인 가게운영조차 못하는 상황서 높은 신용점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차라리 대출지원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저신용자로 사는 게 더 나은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주변 자영업자 중엔 신용점수가 900점이 넘지만 당장 대출받을 곳이 없어 자금융통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가 있다”며 “저신용자 대상 대출지원을 받자니 단기간에 200점 수준의 신용점수를 깎을 방법도 없어 사실상 손을 놓은 것으로 알고있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신용점수가 높더다도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은행권 대출은 잘 나오지 않는다. 대출을 받기 위해선 담보를 따로 제공해야 한다”며 “신용점수와 무관하게 모든 소상공인·자영업자가 힘든 상황인데 신용점수로 지원대상을 구분짓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신용 이상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대출지원을 빠르게 시행할 것이 아니라면, 인센티브 부여 등으로 민간 은행들의 대출확대를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인위적으로 신용점수를 낮춘 행위가 추후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 등에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 당장은 자영업자들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신용도를 낮추고 있지만 신용점수가 한번 하락하면 추후에 금융 지원을 받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민간은행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대출을 확대할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억소리’ 나는 자영업자 대출금…“손실보상·부채탕감 대책 필요하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정부 지원책이 대출 위주라는 점에도 비판이 제기된다. 영업시간 제한 등 행정명령으로 피해가 누적됐음에도 손실보상이 아닌 대출지원을 추진한 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이번 대출지원 외에도 지난해 11월에 손실보상 비대상 업종 중 인원·시설이용 제한업종에 대해 2000만원 한도의 ‘일상회복 특별융자’ 2조원을 신규 공급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올해 1분기엔 영업시간 제한 조치를 받은 소기업과 소상공인 55만개사 대상 ‘선지급 후정산’ 방식의 손실보상금 5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대출 방식으로 500만원을 지급하고 나중에 확정되는 손실보상금으로 대출금액을 차감한다. 지급되는 손실보상금이 500만원 이하일 경우 1%의 초저금리를 적용할 예정이다.
거듭된 대출로 빚만 쌓이는 상황이 지속되자 일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대출지원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요한 자금이더라도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점 등에서 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지현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손실보상비 500만원도 결국 빚으로 남는다는 이유로 선뜻 신청을 못 하는 자영업자가 많다”며 “당장을 모면하기 위한 자금이라고 포장됐지만 행정명령에 따른 손실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쌓이는 대출을 갚지 못해서 결국 파산 신청을 하고 개인회생 절차에 돌입한 자영업자가 많다”며 “현재까지 누적된 대출금만 해도 3억~4억원인 사람이 흔하고 이 빚을 모두 갚기 위해선 영업이 정상화된 후에도 10년은 갚아야 한다. 여기서 빚을 더 늘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말 기준 자영업자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887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2% 증가했다. 1인당 대출 규모는 3억5000만원으로 비자영업자(9000만원)의 약 4배 수준이다.
자영업자 가계대출 중 부동산담보 대출 비중이 높은 것도 문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가계대출 중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은 69.3%로 비자영업자(55.7%)보다 높았다.
환금성이 낮은 주택 외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은 29%로 비자영업자(11.7%)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한국은행은 자영업자의 채무상환능력이 부동산 가격 하락에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자영업자의 가계대출 가운데 일시 상환 대출이 45.6%, 만기 1년 이내 대출이 개인사업자대출 기준 69.8%에 달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국은행은 올해 3월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원리금 상환유예조치가 끝날 경우 자영업자의 총부채 원리금상환금 비율이 41.3%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지원이 유지되는 경우보다 2.2%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이런만큼 소상공인·자영업자 사이에선 부채 만기를 연장해주거나 부채를 탕감하는 방식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코로나 피해 대응을 위한 GDP 대비 자영업자 지원율이 OECD 회원국 평균 16.3%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4.5% 수준이다”며 “근본적인 소상공인 위기 극복을 위해 소상공인 부채 만기 재연장은 물론 부채 탕감과 같은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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