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17일 앞둔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가 어떤 ‘메가톤급 선언’을 내놓을 것인지 정치권 호사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야권 후보단일화 관련 입장 표명일 것이라고 중론은 모아졌다. 아니나 다를까 안 후보는 “더 이상의 무의미한 과정과 시간을 정리하겠다”며 단일화 결렬을 전격 선언했다.
이전부터 정치권에서는 단일화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왔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안 후보의 기자회견 내용은 급작스러웠다. 안 후보의 급격한 태도 변화를 두고 일제히 배경 분석에 돌입한 정계는 기자회견 당일 안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간에 있었던 한 통의 전화, 그리고 전날 긴박하게 돌아갔던 안 후보 측 내부 움직임을 주목했다.
경기도지사‧대선후보 ‘빅딜설’에 격노한 安
20일 안 후보의 기자회견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열렸다. 전 대한민국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소통관 연단에 선 그는 “이제부터 저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중단을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안 후보는 결렬 책임을 윤 후보에게로 돌렸다. 그는 “저의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 제안을 받은 윤 후보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제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혔음에도 제1야당은 이런저런 사람이 뛰어들어 윤 후보 뜻이라며 제 제안의 진정성을 폄훼하고 왜곡시켰다”며 “지난 일주일 동안의 무대응, 일련의 가짜뉴스 퍼뜨리기는 제1야당이 단일화 의지도, 진정성도 없다는 점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 후보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안 후보는 “저는 본선거 3주의 기간 중 1주라는 충분한 시간을 드렸다.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한 책임은 제1야당과 윤 후보에게 있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이날 오전 안 후보와 윤 후보 간 통화 내용에 쏠렸다. 통화 직후부터 이미 여의도 정가에서는 두 사람이 접촉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황이었다. 안 후보는 대화 내용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단일화 논의는) 없었다”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소식통들 전언은 달랐다. 통화는 기자회견으로부터 3시간반 전인 오전 10시께 이뤄졌다. 당초 윤 후보가 먼저 전화했지만 안 후보가 받지 못했고 이후 안 후보가 연락해 통화가 이뤄졌다고 한다. 당시 안 후보는 정치권에 나돌던 ‘후보사퇴설’ 및 ‘6월 지방선거에서의 경기도지사 출마와 대선 빅딜설’에 크게 분노한 상태였다. 그는 전날인 19일 주변에 “이런 저급한 소설이 다 있나”라며 크게 격노했다고 한다. 빅딜설은 안 후보가 국민의힘으로부터 본인 또는 당 인사의 경기도지사 단독출마를 보장받고 대신 윤 후보로의 단일화에 응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윤 후보는 안 후보와의 통화 당시 “지금이라도 실무자를 정해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다. 이미 갖가지 풍문에 완주 의지를 다졌던 안 후보는 윤 후보의 제안마저도 ‘시간을 끌면서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수법’으로 단정하고 거부한 뒤 기자회견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게 소식통 전언이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민의힘 관계자 발(發)로 뭔가가 성사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윤 후보는 거기에 일정하게 선을 긋고 있지만 사실은 자당 관계자발 단일화 마타도어에 힘을 싣고 이득을 취하려는 역할의 모습이 보였다”고 했다. 그는 ‘진정성은 없으면서 단일화를 시늉하는 듯한 모습의 통화였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양당에 드리운 ‘핵관’의 그림자… “함부로 식당문 닫지 말라”
안 후보는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에 ‘통 크게’ 불출마를 선언하고 후보직을 양보했지만 이렇다 할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지는 못했다. 국민의힘은 안 후보를 자당 의원총회에 초대해 모든 소속 의원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장면을 연출해 안 후보를 띄워줬다. 그러나 안 후보에게 결과적으로 돌아온 건 이번 대선에서의 ‘윤일화(윤석열로 단일화)’ 요구뿐이다.
때문에 안 후보가 이번 대선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그는 기자회견 후 ‘지난번 서울시장 보선 때 안 후보가 통 크게 국민의힘이 원하는 제안을 받겠다고 한 적 있는데 이번에는 기대하기 힘든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반대의 경우는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 주변의 몇몇 인사가 안 후보에 대한 ‘마타도어’를 주도하면서 단일화를 무산시키려 한다는 주장이 있다. 김영환 전 의원은 21일 자신의 SNS에서 “단일화 안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윤석열 주위가 있다면 그들의 사고의 밑바탕에 깔린 오만과 독선과 싸우겠다”며 “함부로 단일화의 식당문을 닫지 마라”고 했다.
이재오 당 상임고문도 앞서 15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윤 후보 주변에서 다 이긴 것처럼 오만하고 촐싹대는 사람이 있다. 안 후보가 단일화를 제안한 것에 대한 반응들을 보면 오만하기 짝이 없다”며 “지금 이재명‧윤석열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박빙으로 국민의힘은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안 후보 주변에도 ‘유사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안 후보는 지난달 17일부터 “‘안일화’ 못 들어봤나. 안철수로 단일화”라며 완주 의지를 드러내왔다. 그러다가 이달 13일 돌연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요구한 건 안 후보 측도 애초부터 ‘안일화’만을 위한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여론조사 시 친여 성향 유권자들이 개입해 안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은(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후보 낙선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영환 전 의원은 “(윤 후보와의) 지지율이 4~5배 차이가 나는데도 여론조사를 고집하고 정권교체의 길에서 이탈하는 안철수의 오만과 편견이 새정치의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며 “누구 맘대로 정권교체를 발로 찬단 말인가”라고 일갈했다.
정치권에서는 양당이 대선을 약 2주 앞두고서 정권교체라는 거국적 목적 달성을 위해선 ‘안일화‧윤일화’를 고집하는 대신 즉각 협상에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뉴스핌 의뢰로 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 후보의 단일화 철회 선언 관련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이상 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응답자의 35.4%가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윤 후보에게 유리’는 25.4%, ‘안 후보에게 유리’는 10.6%에 그쳤다.
안 후보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는 안 후보를 향해 “단일화 결렬을 철회해야 한다. 윤 후보와 조건 없이 만나야 한다”며 “정권심판‧정권교체를 넘어 정치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70%는 안철수‧윤석열 후보 두 분의 단일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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