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101주년을 맞은 불교계 최대 규모의 재단법인 선학원이 ‘성범죄 이사장’ 체제로 회귀했다.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여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고소돼, 현직 이사장으로 재판을 받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법진스님이 이사장 소임을 맡으며 4연임 중이기 때문이다. 이를 비판하는 분과스님 측은 넉 달째 거리시위에 나서 ‘법진 이사장 퇴임’을 요구하며 이사회의 파행 운영을 규탄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갈등의 중심에 ‘감시와 견제 없는 이사회의 의사결정구조’가 놓여있음에 주목한다. ‘제2의 법진’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재단법인에 감사제도를 의무화한 법률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매서운 추위가 지속하던 한겨울의 날씨, 2월 초 스카이데일리 기자가 직접 찾은 서울 종로경찰서 대로변 맞은편 인도에는 ‘대법원 징역형 확정 선고, 성범죄자 법진, 선학원 4선 이사장 웬 말이냐’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든 이들이 섰다. 선학미래포럼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매일 ‘선학원 이사장 사퇴 촉구 시위’를 벌이며 현 이사장인 법진스님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법진스님은 2019년 1월17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2년여의 재판 끝에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6년 처음 스님을 고소한 피해자 외에도 이듬해 시민단체를 통해 유사한 피해정황이 담긴 성추행 의혹이 법정에서 대리 증언됐다. 출장길에 성추행하고 음주 후 동침을 종용 당했던 것이 골자다.
‘감시·견제’ 없는 선학원 이사회 “무소불위 독재권력 법진 낳았다”
대법원 판결 직후 불교계에선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법진스님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이런 가운데 법진스님은 2021년 9월28일 선학원의 21대 이사장으로 4연임 취임했다. 2008년 17대 이사장에 취임한 후 햇수로 14년째다. 2020년 9월 법진스님을 대신해 송운스님이 20대 이사장에 취임해 임기를 시작했으나 6개월 만인 이듬해 4월 건강상의 문제로 돌연 사직했고 법진스님은 선학원에 돌아왔다. 취임 당시 그는 인사말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인적쇄신과 세대교체를 이루고 새로운 선학원 100년을 이끌어갈 새 이사장을 선출한 뒤 이사장 소임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재까지 바뀐 게 없는 상황이다. 본지는 수차례에 걸쳐 법진 이사장 측에 관련 입장에 대해 휴대전화 문자 등을 통해 질의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
선학원은 ‘정관 제6조’에 ‘임원은 이사회에서 본 법인의 승려 창건주 또는 분원장 덕망이 높은 승려를 이사회에서 선출하고, 그 취임에 관하여 바로 주무장관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해뒀다. 일반인도 아닌 승려가 성추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면 정관의 이사장 자격인 ‘덕망 높은 승려’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회는 법진스님을 이사장으로 선출하고 그의 사직서를 반려했다.
전국 분원장 스님들은 사건 발발 이후 5년 넘게 ‘덕망 높은 법진 이사장 여직원 성추행 웬말이냐’는 플래카드를 들고 이사장 사퇴 촉구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2018년 3월 일흔의 설봉스님은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에서 단식정진을 하다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성추행 문제 이외에도 이사회에 대한 감사나 견제 장치가 없어 내부에서 의혹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선학원은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민법 제32조는 ‘비영리법인의 설립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법인으로 설립할 수 있다’고 규정해 뒀다. 현행법상 민법의 비영리법인뿐만 아니라 공익법인 법, 사립학교법, 사회복지사업법, 의료법 등 다른 법률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의 감사는 등기부에 등기되지 않는다. 이유는 민법 제49조에서 감사는 등기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다.
반면 감사제도가 필수적인 ‘주식회사’의 경우 등기와 주주총회, 감독기관 등이 의무화됐고, 상법 제393조와 공익법인법 제5조 등에 따라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이사회를 꾸린 후 의사결정에 참여해 주주를 감시 및 견책할 수 있다.
정인진 변호사는 감시 및 견제 구조가 전혀 없으므로 재단법인 이사회의 경우 잘못되면 폐쇄회로와 같이 깜깜이 운영 및 독재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재단법인이란 게 사단법인이나 주식회사 등과 달리 어떤 법적행위를 하는 게 없고 주주총회란 게 없어 모든 의사결정을 이사회 안에서 하게 된다”라며 “이사회 밖의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이사회가 한 번 잘못 돌아가게 되면 구제할 방법이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재단법인 이사회’ 한 번 망가지면 통제불가, 법률 개정 ‘한 목소리’
실제 분원 소속 A스님은 “선학원은 한국에서 가장 큰 불교재단으로 자부심이 컸다. 법진 이사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이사장직을 맡았던 큰 스님들은 물욕이 없어 조계종단 내에서 역할을 하고 큰 어른의 자리를 지켰으나 법진 이사장이 취임하며 모든 게 망가졌다”고 주장했다. 분원장 B스님은 “선학원 이사회가 개별 사찰 재산을 전부 장악한 것과 다름이 없어 분원장과 스님들은 관리인 신분으로 추락했다”라며 “재단의 이사들은 분원장들이 본인들의 지침을 어기면 ‘사고사찰’로 규정 후 인사권을 휘둘러 보복 및 징계한다”고 털어놨다.
이사회 관계자 C스님도 입을 열었다. 그는 “이사회 자체가 완전히 이사장의 손에 넘어가 있다. 성범죄자가 4연임이 가능할 정도로 이사회 내부에서 견제나 감시가 전혀 안 되고 있다. 법진스님이 현재 이사회를 완벽하게 장악한 상황이다”라며 실정을 알려왔다. 그는 “현행 법체제는 성범죄자가 사표를 내고 연임을 하더라도 견제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며 “국회 등에서 입법 발의를 하고 관련 법을 개정해서 ‘제2의 법진스님’이 나오지 못하게끔 제도적 보완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원기 홍익대 경영대학원 세무학과 전 교수(공인회계사)는 현행법상 재단법인 이사회의 권한이 막강함을 지적하고 관련 법제도의 개정 및 시정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배 교수는 “현행 비영리법인이 받는 주무관청의 표준 정관 및 지도에 따른 감사제도는 일본의 개화기 시절인 19세기 말에 제정했던 민법이 유지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배 교수는 보완책으로 일본에서 2008년 12월부터 시행 중인 새로운 공익법인제도인 ‘평의원회’를 소개했다. 재단법인 지배구조의 변화를 통해 투명성 및 재단운영의 건전성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에 따르면 최소한 3인 이상의 평의원, 3인 이상의 이사, 1인 이상의 감사로 임원을 구성해야 한다. 평의원회는 재단법인 운영에 관한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사후 법인 운용을 감독하는 기능을 가진다.
한편으로 올해 2월 기준, 21대 국회가 개원 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9건, 공익법인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익법인법) 10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1건 등 모두 20여 건의 비영리법인 관련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들 중 재단법인에 관리, 감독 강화를 위한 공익법인법 개정안은 지난해 7월 정부가 발의한 것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시민공익법인’을 통해 민법에 따라 설립된 사단법인 혹은 재단법인은 국회추천 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시민 공익위원회를 설치 후 관리와 감독을 받게끔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관련해 배 교수는 “해당 개정안은 현행 민법에 따른 비영리법인의 각 주무관청의 ‘허가’ 제도는 그대로 놔두고, 공익법인 인증을 받으려면, 개정 공익법인법에 따라 신설되는 공익위원회의 ‘인증’을 받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이어 “이를 위한 법무부 산하에 공익위원회 및 각 지부 신설은 결국 민법상 비영리법인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는 ‘옥중옥’ 개정”이라 비판했다. 민법의 법인 관련 조항 및 재단법인 파행운영 관련 법 조항을 일괄적으로 재검토 후 종합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