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보험 문턱 낮춰 ‘전세사기’ 피해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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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보증금 먹고 튀는 전세사기 방지책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8-26 00:02:30

“사람들은 젊을 때 그런 일은 한 번쯤 당해볼 수도 있다면서 ‘인생 수업비용’으로 여기라 하지만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왜 제가 피땀 흘린 노력으로 사기꾼들을 배불려야 하나요? 평범한 꿈과 일상은 무너졌고 밤마다 원망과 자책,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보증금 먹튀 국회 토론회’에 참여한 전세사기 피해자 A씨의 하소연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A씨는 올 5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신축빌라를 4억2900만원에 계약했지만 얼마 안 가 그곳이 ‘깡통전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계약 매물은 외부 감정 평가 결과 3억원에 불과했고 분양가도 4억1900만원으로 전세금보다 적었다. 국민신문고, 경찰청 등에 문의했지만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말에 A씨의 절망감은 깊어만 갔다. 결국 계약금 2000만원을 포기하고 다시 단칸방을 찾아봐야 했다.

이처럼 계약 기간이 끝났음에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금액·건수는 3407억원·1595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청년층이 주로 피해를 입었다. 20·30대의 사고건수는 전체 사고의 70%에 달했다. 피해자 10명 중 7명이 청년이라는 뜻이다.

왜 이처럼 전세보증금 관련 사포가 폭증했을까? 깡통전세(전세값≥매매값)가 속출한 결과로 해석된다. 깡통전세 사기는 임대인이 갭투자(전세보증금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집을 매매하는 것)로 주택을 산 뒤 집값이 떨어질 때 발생하게 된다.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자 주택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긴 후 보증금을 챙겨 잠적하는 수법이다. 심지어 아예 공인중개사와 짜고 전세금을 시세보다 부풀려 계약을 맺은 뒤 세입자 몰래 명의를 바꿔 전세금을 떼어먹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전세 사기를 예방 비법중 하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전세보증보험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보증기관이 일단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내주고 추후 임대인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공공기관인 HUG·주택금융공사와 민간기관인 SGI서울보증에서 운영한다. 가입만 한다면 보증금을 떼일 위험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문제는 가입 문턱이 다소 높다는 점이다. 모든 주택에 적용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건에 충족하는 주택만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소유자와 임대인이 일치해야 하고 선순위채권총액이 주택가격의 60% 이내이고 경매신청·가압류 등 소유권 권리침해도 없어야 한다.

주택 거래 경험이 부족한 청년층은 해당 주택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조차 없는 ‘깡통주택’ 인지 여부도 선별하기가 쉽지 않다. 등기부등본·전입세대열람내역서·건축물대장 등을 발급해 확인하기 보다는 공인중개사를 믿고 계약하고 있다. 또 전세보증보험은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를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으므로 신청 과정에서 거주하는 집이 깡통전세라는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전세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 ‘나쁜 임대인’이 아니길 기도해야 할 뿐이다.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전세보증보험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 보증조건 기준을 낮춰 깡통전세와 같은 주택에 입주한 세입자의 전세금도 보증해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은행에서 전세금대출을 받을 때 또는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전세계약을 체결할 때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주택인지 아닌지를 고지하도록 법제화해야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전세보증보험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보증보험 가입을 활성화하고 미가입자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윤승준 기자 sjyoo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