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총(David 塚)’은 영국인 퍼시발 데이비드(Percival David·1892~1964)가 발굴 자금을 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봉총에 붙어있는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봉분 지름이 25m인 소형급 무덤이다.
서봉총과 연접해 쌍무덤(표형분)을 형성하고 있어 서봉총을 북분, 데이비드총을 남분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데이비드총 출토 유물, 상당한 규모로 추정
데이비드총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와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가 발굴했다. 발굴 도중에 우메하라가 중국 화북지방으로 조사를 떠나는 바람에 실제 발굴과 조사는 고이즈미가 완료하며 출토 유물은 모두 일본으로 반출했다.
현재 이 유물들의 소재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발굴 당시를 찍은 20여장의 사진 자료를 통해 유물의 양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우메하라 고고자료’에 의하면 출토유물은 금제 가는고리 귀걸이(細鐶耳飾) 1쌍, 곡옥과 유리옥을 장식한 목걸이, 금제 팔찌와 반지 2쌍 등 장신구류, 발모양 그릇받침(鉢形器臺)을 비롯한 토기류, 철제솥 2점, 초두(鐎斗) 등이다.

특히 2016년~2017년 재발굴을 통해 데이비드총의 봉분 둘레를 따라 설치된 원형의 제사유구 9개를 확인했고, 제사에 쓴 동물 유체와 소형의 제사용 토기 등도 추가로 발굴했다.
무덤주인은 효진이 낳은 눌지왕의 딸
데이비드총은 비록 출토 유물의 전모와 수량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우메하라가 남긴 사진 자료를 분석해 볼 때 무구류는 없고 장신구가 다수인 점으로 보아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또한 봉분이 서봉총(북분) 봉분을 파고 들어간 것으로 확인돼 서봉총보다는 다소 늦은 시기인 대략 5세기 후반에 조성된 무덤이다. 특히 서봉총과 연접해 쌍무덤을 형성한 점은 무덤주인이 서봉총 무덤주인과 가족관계임을 시사한다.

데이비드총의 무덤 주인은 서봉총 무덤주인인 실성왕의 딸로 눌지왕의 후궁이 된 효진(曉辰)이 낳은 눌지왕의 딸이다. ‘고구려사략’ <장수대제기>이다. ‘장수 29년(서기 461년) 신축 3월, 자비(자비왕)가 미해(미사흔)의 딸(파호)을 처로 삼았다. 효진이 얻은 공주(눌지왕 딸)를 며느리로 삼고자 하였으나 지금에 이르러 눌지가 죄를 지었고 또한 신분이 낮아져 허락되지 않아 스스로가 서로 혼인했다. 신라가 나라(고구려)를 등짐이 이때부터 더욱 심했다(長壽二十九年 辛丑 三月 慈悲以美海女爲妻 曉辰欲得公主以爲其婦 至是訥祇得罪 而不許下降故自相婚嫁 羅之背國自此益甚).’

효진이 자신의 딸을 자비왕의 왕후로 삼고자 했으나 자비왕이 미사흔의 딸 파호(巴胡)를 왕후로 삼은 내용이다.
효진이 낳은 눌지왕의 딸 이름은 ‘고구려사략’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신라사초’는 효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효진의 딸이 언제 출생했으며 언제 사망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눌지왕의 딸인 점으로 보아 눌지왕의 재위시기인 430년(효진 40세 전후)경에 출생해 소지왕 시기인 490년 경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략 사망 시 나이는 60세 전후이다.

데이비드총의 무덤 주인은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사람으로 효진이 낳은 눌지왕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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