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1일부터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뀐다.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뀌면서 식품업계는 올해 8월부터 제품 테스트를 진행해왔다. 유통기간에서 보수적으로 잡았던 표기일이 소비기한으로 대폭 늘어나면서 제품 안정성과 품질을 맞추기 위함이다. 다만 소비자들의 소비기한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정부와 업계의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38년 만에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유통기한은 1985년 도입된 이후 38년 동안 식품의 판매 및 유통을 허용하는 표시 기준이다. 영업자를 중심의 기한으로 통상 품질안전 한계기한의 60~70%로 설정된다. 예를 들어 어떤 식품의 품질 유지 기간이 10일이면 유통기한은 6~7일로 정해지는 셈이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식품의 부패 및 변질유무와 상관없이 판매가 불가하다.
반면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길다. 유통 및 판매 허용 기간을 넘어 실제로 소비자가 식품을 섭취하는데 건강의 이상이 없을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품질안전 한계 기한의 약 80~90%로 정해진다.
이달 1일 식약처는 제도 시행에 앞서 23개 식품유형 80개 품목의 ‘소비기한 참고값’ 등을 수록한 자료를 이달 1일 마련·배포했다. 이에 따라 두부는 17일(유통기한)에서 23일(소비기한)로, 간편조리세트는 6일에서 8일로 표시값이 달라진다. 발효유는 기존 18일에서 32일로, 과채음료의 경우 11일에서 20일로 두 배 가까이 길어진다. 다만 우유의 경우 냉장 보관기준 개선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의견에 따라 2031년까지 유예기간을 뒀다.
서울시 관악구에 거주하는 김주연(28)씨는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는데, 자취하고 있어서 소스나 재료 소진 기간이 길다”면서 “소스는 몇 번 사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소비기한으로 바뀌면 기간이 늘어나서 좋다”고 말했다.
소비기한 내로 먹는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났더라도 섭취 시 건강과 안전에 문제가 없다. 이는 식품을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 식품 폐기 및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3년간 발생한 폐기물 중 30%는 음식물류 폐기물로 나타났다. 2020년 전국에서 발생한 폐기물 총량 4만7000t 중 음식물류 폐기물(분리배출·가연성)은 1만4000t으로 전체의 29.6%다. 2018년과 2019년 음식물 폐기물 비중은 각각 28.9%, 31.6%였다.
시민단체 소비자기후행동에 따르면 생산단계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폐기비용은 5900억원, 가정 내 폐기비용은 95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 해 평균 1조5400억원의 음식물이 폐기된다는 말이다. 소비기한 도입으로 연간 수천억 원대의 식품폐기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소비기한 도입은 세계적 추세에 비춰 보면 늦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2018년 식품 표시 규정에서 유통기한을 삭제하고 소비기한 표시를 권고했다.
유럽연합(EU)은 식품의 특성에 따라 소비기한·품질유지기한·냉동기한을 구분해 사용한다. 일본도 오래전부터 소비기한과 상미기간(식품의 맛이 가장 좋은 기간)을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식약처는 소비기한 시행 이후에도 유통기한이 표시된 기존 상품이 소진되도록 1년의 계도기간을 뒀다. 또한 기존 포장지 폐기에 따른 자원 낭비 등을 고려해 소비기한 표시제는 내년 말까지 계도기간을 적용한다.
식품업계 준비 상황… 소비자 인식은?
식품업계는 정부가 발표한 소비기한에 발을 맞춰 계도기간 동안 품질 테스트 등 시행일에 맞춰 준비한다는 분위기다. 오뚜기 관계자는 “정부 취지에 맞게 올해 8월부터 업소용 제품을 위주로 72개 제품에 소비기한을 적용한 상태다”라면서 “가정용 제품은 내년부터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농심 관계자는 “소비기한에 맞게 제품의 맛과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지금 테스트 단계에 있다. 테스트를 통해 식품 안전성과 품질에 이상이 없을 정도로 실험을 진행 중”이라면서 “라면 같은 경우는 소비기한이 적용이 돼도 유통상의 변화가 크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라면은 빠르면 한 달에서 3개월 안에 거의 소비하는 편이라, 소비기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크게 변화가 오는 식품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소비기한 적용 포장재를 준비 중이고 유통기한이 적용된 잔여 부자재의 불필요한 폐기가 없도록 소진 후 제품별 순차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다”라며 “해당 제도를 도입하면서 소비자가 좀 더 환경적, 경제적으로 소비하고자 하는 정부에 취지에 공감하고 그에 맞게 지원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제도 시행까지 3일이 남은 시점에서 식품기업은 소비기한에 맞춘 제품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하지만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소비기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에 따르면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양성범 교수팀은 ‘식품 소비기한에 대한 소비자 인식 및 개선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연구팀이 올해 8~9월 소비자 97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소비자의 52.9%는 마트 등에서 소비기한이 지난 제품이라도 사먹겠다고 응답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섭취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6.2%였다.
연구팀은 “이는 충분한 홍보 없이 소비기한 표시제도를 도입하면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식품이라도 제대로 보관했다면 일정 기간 섭취가 가능하지만, 소비기한이 지났다면 제품의 보관 상태와 관계없이 먹으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비기한 단독 표기로 인한 소비자의 혼란이 우려된다”며 “소비자가 소비기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그 기간이 지나더라도 해당 제품을 섭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 관계자는 “올해 내내 소비자 교육을 진행했고, 운영협의체 쪽에도 식약처가 제작한 가이드라인과 홍보자료를 전하고 있다. 또한 정부 부처인 문체부나 행안부에도 공문을 전달해서 확산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대형마트나 편의점 같은 유통업계와도 홍보 협업 중이며, 제조업체에도 광고에 (소비기한 표시관련) 문구 등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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