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릉 
전주 
)
이 무렵, 동북 지역의 패권을 잡겠다는 야망을 품은 자가 있었으니 바로 주나국(朱那國)의 왕자 을음(乙音)이었다. 그는 은밀히 주변 소국을 돌아다니며 세력을 규합했다.
을음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조나국(藻那國)이었다.
“지금 조나국의 백성도 삼삼오오 고구려로 떠나가고 있는 줄 압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되면 나라를 들어 바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지금이라도 우리가 힘을 합해 고구려의 전횡을 막아야 합니다.”
조나국 왕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대의 말이 옳소. 나도 좌불안석이오.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고구려의 군현으로 편입되느니 차라리 조나국의 왕으로 죽겠소.”
“그렇다면 먼저 거병하십시오. 제가 다른 나라를 결집해 따르겠습니다.”
귀가 얇은 조나국 왕은 을음의 약속만 믿고 군사를 일으켰다.
태조왕은 조나국의 군대가 쳐들어왔다는 급보를 받고 즉시 패자 달가(逹賈)를 불러 명을 내렸다.
“즉시 기병 3천을 이끌고 가서 조나군을 치도록 하시오.”
달가는 관나부(貫那部) 출신으로 활을 잘 쏘았다. 특히 달리는 말 위에서 연속으로 쏘는 능력이 뛰어났다.
왕명을 받은 달가는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로 내달렸다. 고구려군이 나타나자 조나국 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빨리 대응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구려군의 서슬 푸른 기세에 전의를 상실한 조나국 왕은 일단 대치하면서 주나국의 을음이 군사를 모아 오기를 기다렸다.
조나군이 움직이지 않자 달가는 군사를 두 대로 나누어 공격에 들어갔다. 달가가 앞장서서 달려 나오자 조나군 장수 엄홀(嚴忽)이 창을 꼬나들고 가로막았다. 달가가 적장 엄홀을 향해 세모창을 날렸다. 엄홀은 몸을 틀어 피한 후에 창을 들어 반격했다. 수십 합을 겨뤄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달가는 짐짓 못 이기는 척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기세가 오른 엄홀은 흥분해서 맹렬히 달가를 쫓았다.
십여 장쯤 달렸을 때 달가가 별안간 몸을 틀더니 활을 쏘았다. 그는 주몽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고구려 명궁의 계보를 잇는 궁술의 대가였다. 어느새 날아간 화살이 엄홀의 이마에 꽂혔다. 엄홀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장수가 죽자 조나군은 싸울 의욕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달가가 달아나는 적들을 향해 연달아 활을 쏘았다. 수십 명의 적군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혼비백산한 조나국 왕은 군사들 사이에 섞여서 도망치기 바빴다. 달가가 그를 향해 활을 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왕의 어깨에 박혔다. 그는 화살을 맞은 충격으로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고구려 군사들이 굶주린 들개처럼 달려들어 조나국 왕을 포박했다.
조나국 왕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을음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고구려군은 훨씬 강했다. 주변 몇 나라의 전력을 합친다 해도 고구려의 적수가 되기는 어려웠다. 주나국 왕자는 당분간 사태를 관망하기로 했다.
한편 국내성으로 압송된 조나국 왕은 태조왕 앞으로 끌려갔다.
태조왕이 조나국 왕을 크게 꾸짖었다.
“너는 어찌하여 짐에게 반기를 들었느냐?”
태조왕의 호통에 패장은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구걸한다.
“주나국 을음의 꼬임에 넘어가 이런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부디 선처해 주십시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네가 잘못을 뉘우친다니 더는 죄를 묻지 않으마.”
태조왕은 너그럽게 용서하고 대사자의 직위를 주어 신하로 거두었다. 이로써 조나국도 고구려의 영토로 흡수됐다.
좌보 물돌이 굳은 얼굴로 왕에게 말했다.
“주나의 왕자 을음이 골칫거리입니다. 이번 일만 해도 배후에 그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병해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병든 부분을 먼저 도려내야 합니다.”
“지금 바로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소. 조나국을 복속시킨 지 얼마 안 되어 주나국까지 친다면 주변 소국들이 우리를 경계하게 될 거요.”
태조왕은 당장 을음을 치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경계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을음은 조나국의 실패를 거울삼아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다. 고구려군의 막강한 전투력을 실감했기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고심 끝에 선택한 방법은 부여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부여가 비록 학반령 전투에서 패한 이후 세력이 약화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고구려와 맞설 수 있는 동북아의 유일한 나라였다.
을음은 부여로 사신을 보냈다.
“고구려는 상국인 부여를 예로써 받들어야 함에도 자신들의 힘만 믿고 무도하게 굴고 있습니다. 그들의 오만한 태도는 주변 소국들의 원망을 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부여가 일어나 고구려를 정벌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대국에서 천군(天軍)을 일으킨다면 소인은 폐하의 말고삐를 잡고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부여 왕은 사신의 전언을 듣고 마음이 동했다. 고구려의 눈치를 보며 지내는 것은 대부여국의 자긍심이 용납지 않았다.
부여 왕은 신하들에게 고구려를 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들은 대신 서물지(徐勿支)는 일이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서물지는 급히 나서서 간했다.
“을음의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고구려와 전쟁을 해 봤자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이것은 을음이 어부지리(漁夫之利)를 노리고 펼치는 이간계입니다. 공연히 우리 군사를 상하게 하면서 평지풍파를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부여 왕이 비로소 사태 파악을 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겠소?”
“주나국 사신에게는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를 치겠다고 하십시오. 다른 한편으로는 고구려로 사신을 보내 을음의 간계를 낱낱이 고하십시오. 그리하면 두 나라 간에 싸움이 벌어질 테니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면 될 일입니다.”
부여 왕은 서물지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을음이 보낸 사신을 불러 곧 고구려를 치겠다고 안심시켜 돌려보낸 후 은밀히 고구려로 사신을 보냈다.
부여의 사신을 만나 본 태조왕은 물돌에게 물었다.
“을음의 동향은 어떠합니까?”
“그는 그동안 군사를 양성하고 주변 소국 중 절반에 가까운 나라를 끌어들여 세를 불렸습니다. 얼마 전에 부여에 사신을 보낸 것도 사실입니다.”
물돌은 주나국에 간자를 보내 을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우태 도두가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이번 기회에 주나국을 쳐서 화근을 없애야 합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나중에 감당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태조왕은 결단을 내렸다.
“이제는 때가 된 듯하구나. 설유(薛儒) 장군은 기병 3천을 이끌고 가서 을음을 잡아 오도록 하시오.”
환나부(桓那部) 패자 설유는 군사를 거느리고 호호탕탕 주나국으로 쳐들어갔다.
한편, 부여에서 돌아온 사신의 보고를 받은 을음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부여가 생각대로 움직여 준다면 고구려를 상대하는 것이 한결 쉬워질 것이었다.
을음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설유의 군대는 쉬지 않고 달려서 주나성 인근에 다다랐다.
을음이 측근들과 앞으로 계획을 살피고 있을 때 파수병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성 밖 십여 리 지점에 고구려군이 나타났습니다.”
놀라서 뒤로 넘어갈 일이었다. 고구려가 선수를 치리라고는 을음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정신을 가다듬은 을음은 날랜 군사를 뽑아 하명했다.
“너는 당장 부여로 달려가 구원을 요청해라.”
소국의 거수들에게도 전령을 보내 상황을 알렸다.
을음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부여로부터 구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부여에서는 당연히 구원군이 올 리가 없었다. 고구려군의 위용에 겁을 먹은 소국의 거수들도 군사를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구려군은 성을 포위한 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것이 을음을 더 초조하게 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을 때 격문을 단 화살이 성안으로 날아들었다.
우리의 목표는 을음뿐이다.
그를 잡으면 성민에게는 어떤 죄도 묻지 않고 물러가겠다.
격문을 읽은 백성은 술렁였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길이 보였기 때문이다.
주나국 왕은 울면서 아들을 나무랐다.
“네가 헛된 야망을 품은 탓에 대대로 이어온 사직이 무너지게 생겼다.”
을음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문득 자신을 쳐다보던 백성의 원망 어린 눈빛이 떠올랐다.
장군 풍계(風桂)가 다급히 뛰어왔다.
“성민이 들고일어나 동쪽 성문을 열었습니다. 고구려 군사들이 궁에 당도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