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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은 윈스턴 처칠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2002년 BBC가 조사한 ‘위대한 영국인 100명’에서 다이애나비(3위)·다윈(4위)·셰익스피어(5위)·뉴턴(6위)·엘리자베스 1세(7위)·존 레논(8위) 등을 제치고 으뜸에 꼽혔다. 20여 년 전의 조사라서 아직 유효한지 알 수 없지만 가장 위대한 총리(지도자)를 고르라면 수십 년이 지나도 처칠이 선택될 것이라 확신한다.
처칠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로부터 영국을 구한 인물로 여겨져서다. 흔히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처칠이 히틀러에게 무릎 꿇었다면 영국은 나치 독일의 속국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랬다면 나아가 2차 대전의 결과까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처칠이 영국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2차 대전의 승리는 엄연히 연합국의 승리였다).
정치인 처칠은 젊어서도 인기가 꽤 높았지만 늙어서야 진가를 발휘했다. 2차 대전 발발 전 처칠은 1차 대전에 이어 또 전쟁을 일으켜 유럽을 집어삼키려는 독일의 야욕을 경고해 왔다. 영국 의회는 그 반대였다. 몇몇 징후가 나타났지만 애써 무시했다. 처칠이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당을 옮겼다가 다시 보수당에 입당하면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것도 신뢰를 떨어뜨렸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정말로 영국을 공격했고, 영국 정부는 처칠을 해군 장관에 임명했고, 체임벌린 총리가 외교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총리에 임명했다.
“우리는 항복하지도 패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이고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가일층하는 자신감과 역량으로 하늘에서 싸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섬(영국)을 지켜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안에서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에서 거리에서 싸울 것이며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we shall never surrender).”
2차 대전 중 처칠은 영국인의 가슴에 요즘 말로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불어넣었다. 영국인도 아닌 필자도 소년 시절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곧바로 이어지는 “그런 일을 한 번도 그려 본 적 없지만, 만약 이 섬 또는 섬의 대부분이 강제로 점령당하고 굶주림에 직면하더라도 대영제국은 해외에서 영국 함대의 보호를 받으며 무장해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까지 읽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는 독립군의 심정을 떠올렸는지도.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관계가 개선되려면 과거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처칠의 말 “현재와 과거를 경쟁시킨다면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를 언급했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배상 문제를 과거로, 일본과의 관계·외교·무역을 미래로 놓았다. 분명 일본은 한국의 큰 무역 대상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한일 관계 개선으로 대일 수출액이 연간 27억 달러, 우리 돈으로 3조5000억 원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은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도 언급했다. 2차 대전에서 나치 독일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지금은 우호 관계라는 차원에서다. 적어도 독일은 사과했고 반성했고 또 사과했고 반성했다. 2차 대전 종전 뒤 1964년 처칠은 한 대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킬 힘을 박탈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끝날 때, 그 일이 행해지는 대로 징벌의 끝이 있어야 합니다. 망각의 축복된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유럽이 파멸로부터 구원받으려면 과거의 모든 범죄를 망각하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생겨난 증오와 복수를 끌고 갈 여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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