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58] 전국적 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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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수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죽기로 맹세했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29 09:42:46

“아가야, 너도 보거라. 상감마마께서 보내신 비밀편지란다.”

“무슨 내용입니까, 아버님?”

“나라의 어려움을 슬퍼하시며 충성된 전국의 열사들에게 거병하라는 어명을 내리셨단다.”

“전하께서 얼마나 슬프고 힘드시겠습니까? 이대로 나라가 망하도록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아버님!”

윤희순이 결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시집 온 지 20년이 되어 열여섯 처녀는 어느덧 서른여섯 중년으로 성장했다. 시어머니가 안 계시는 쓸쓸한 집안에서 어린 몸으로 집안과 문중의 크고 작은 일을 의젓하게 처리하여 칭찬이 자자한 며느리다. 그녀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돕느라 집 앞에 숯가마를 만들어 마을 여인들과 함께 숯을 구워 팔아 생활에 보태기도 하였다. 작은 얼굴에 당돌한 눈매, 오똑한 코, 야무진 입술은 그녀가 만만한 여인이 아님을 보여준다.

“얘야, 네 마음과 기개는 나도 알고 여기 당숙님도 아시는 일이란다. 하지만 너는 우리 집안의 대들보가 아니냐. 나랏일은 우리 남자들이 할 터이니 너는 집안을 잘 지켜야 하느니라.”

시아버지 홍석은 며느리를 다독였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저 아이가 사내로 태어났으면 이 난국에 참으로 큰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고종의 거의밀지를 전달하는 이범진의 행보는 바쁘게 이어졌다. 그는 팔도의 유생들에게 밤낮없이 밀명을 전하러 다녔다. 춘천유생 유인석과 이소응은 물론, 제천의 이정규, 이천의 김하락, 함흥의 최문환, 예천의 서상열, 광주의 기우만, 성주의 허위 등도 이 밀지를 받았다. 거의밀명을 받은 이들은 거의 다 의병을 일으켰다.

이천의 김하락은 1500명의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이천에 진입하는 왜군 180명을 패주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그는 국왕의 밀지를 받고 여러 장수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죽기로 맹세했다. 김하락 부대는 서울에서 내려온 200명의 왜군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항전을 벌였으나 패배했다. 그러나 김하락은 여주의진을 찾아가 다시 2000여명의 의병을 모았다. 서울로 올라가 국왕을 구하려고 남한산성을 점거하여 한 달 가까이 있었는데, 내부 배신자들이 관군과 내통하여 성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남한산성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춘천에서는 단발령에 격분한 유생 정인회가 1896년 1월에 400여 명을 모아 봉기하여 춘천관찰부를 공격하여 점령했다. 이소응은 고종의 밀지를 받기 전에 이미 춘천의병 창의대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의병봉기의 격문을 팔도에 보냈고 가평 관아를 급습하여 관찰사 조인승과 초관(종9품 지휘관) 박진희를 처단했다. 이소응 의병은 방향을 돌려 서울로 진격했고 이에 놀란 정부는 궁궐을 수비하던 친일괴뢰군인 친위대 420명을 춘천으로 급히 파견했다.

그외에도 평안도와 충청도, 전라도에 일본 교관의 지휘하에 친위대가 급파되었다. 그렇게 내려 보낸 친위대는 700여 명에 달했고, 1000여 명만 남아 경복궁을 경계하게 되었다. 하지만 춘천의병은 시간이 가면서 열세에 몰렸다. 이소응은 벌업산에서 패퇴해 제천의 유인석을 찾아갔고, 이후 춘천 의병진영이 함락되자 유홍석이 이끄는 소부대 또한 유인석과 합류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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