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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은 MBTI 열풍 수준을 넘어 MBTI에 갇혀 사는 수준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부터 MBTI를 활용하는가 하면 취업시 기업에서 MBTI 검사 결과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짧게 스쳐 간 유행들과는 달리 MBTI 유행은 한때 굳게 자리 잡았던 ‘혈액형별 성격 분석’처럼 길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젊은 세대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10·20세대 10명 중 8명은 친구로 선호하는 MBTI 유형이 있다는 설문조사가 나올 정도다. 기업들도 마케팅에 MBTI를 활용하면서 이같은 열풍에 기름을 붓고 있다. 질문 몇 가지를 던지고는 MBTI를 구분하고 맞춤 상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MBTI를 인간의 유형을 구분 짓기 위한 절대적 근거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다. 상황이나 적응에 따라 반응하는 측면이 두드러질 뿐 누구에게나 다양한 성향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방송 소재·분석 보고서에도 온통 ‘MBTI’
최근 MBTI는 대한민국 곳곳에 침투해 활용되고 있다. 게임·금융권 등 분야를 나눌 것 없이 마케팅·이벤트로 활용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상상인증권이 MBTI별로 기업유형을 분류한 리포트를 내놓기도 했다. MBTI의 16개 유형을 기업에 대입해 리포트를 내놓은 것이다. 안정적 성장(I)·외형성장(E)를 비롯해 기존사업 강화(S)·신사업(N), 시장의 낮은 관심(T)·높은 관심(F), 실적 예측 쉬움(J)·실적 예측 어려움(P) 등으로 분류한 것이다.
방송에서도 아이템을 활용하고 있다. 13일 ‘티빙’에서 공개될 연애 프로그램은 MBTI와 사주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각종 웹툰으로 MBTI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정 MBTI의 생활 속 특징을 아기자기한 캐릭터로 표현해낸 것이다. 해당 게시글에는 같은 MBTI를 가진 사람들이 공감된다는 댓글을 올리기도 한다.
보고서에서도 분석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9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3 대한민국 웰스(Wealth)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자산 100억 원 이상이거나 총자산 300억 원 이상 보유한 ‘슈퍼리치’를 MBTI로 분석한 결과 ‘ESTJ’가 가장 많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8.5%의 비율을 가지고 있는 ESTJ가 ‘슈퍼리치’ 중에서는 26.8%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ESTJ 유형은 사회적 질서를 중시하면서 현실적이고 추진력이 있다고 평가받는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MBTI는 마케팅 뿐만 아니라 분석 보고서에도 포함되고 있다.
MZ세대 10명 중 8명은 “MBTI 유형 봐요”
MBTI의 영향이 각종 마케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MBTI를 ’나와 잘 맞는 사람‘과 ’나와 잘 안 맞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용도로도 쓰이고 있다.
부천에 사는 20대 여성은 “아무래도 MBTI를 듣고 나면 관련 성격 위주로 보이기도 한다”며 “첫 만남에 어색함을 풀 때 MBTI를 물어보지만 듣고 나서 나랑 안 맞는 MBTI면 경계하게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10·20대 10명 중 8명꼴로 친구를 사귈 때 MBTI 유형을 본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형지엘리트가 같은 달 2~15일 초·중·고·대학생 373명을 대상으로 관련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MBTI에 따라 친구의 성격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응답자의 84%는 친구를 사귈 때 선호하는 MBTI가 있다고 답했다. 특히 자신과 같은 유형의 MBTI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배치되는 의견도 있었다.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B씨(27)는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나눈다는 게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며 “어디까지나 재미로 봐야할 것인데 지나치게 몰입해서 적용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BTI 절대적 기준 아니야… “편리한 점 있지만 누군가를 구분 짓는 용도로는 안 돼”
일부 전문가들도 MBTI가 사람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조언을 남겼다.
김재형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은 젊은 세대에게 MBTI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서사적인 설명을 좋아하는 세대가 아니다 보니 자신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MBTI가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부장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MBTI를 본인이 이해한 수준으로 재단하고 판단하면 MBTI에 사람을 맞추는 주객전도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중적으로 MBTI로 알려진 검사에 대해서도 “사실 그것을 MBTI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정식 검사는 전문가의 해석까지 필요한 것이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검사가 유행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은영 한국상담심리학회 대외협력위원장도 MBTI에 대해 “내면의 성향들이 특정 개인에게 있고 없고가 아니라 우리 안에 다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적응하고 편한 것을 선택해서 쓰는 것”이라 설명했다.
고 위원장은 상황에 따라 MBTI 검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도 강조했다. 그는 “사람이 사회에서 편한 것을 한없이 다 쓸 수는 없지 않느냐”며 “예를 들어 규율이 강한 집단에 오래 소속돼 있다 보면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태어나서 오른손잡이였던 사람이 오른손을 다치면 왼손을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더 편하고 적합한 쪽으로 적응하는 것인데 MBTI가 누군가의 본성을 구분 짓는 용도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MBTI가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진단하고 성찰하는 용도로 쓰인다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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