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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의 문화방담] 창조와 생산의 氣 예술 조각가 김영원
우리 미술의 정체성인 기(氣)예술의 조형 아티스트
기(氣)는 예술의 창조성과 생산력의 원천임을 역설
기(氣) 예술의전당, 김해시립 ‘김영원미술관’ 내년 개관 예정
이재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09 06:35:00
 
▲ 이재언 미술평론가
기운생동(氣韻生動). 기(氣)란 에너지이며 운(韻)이란 에너지에 깃든 리듬이나 흐름이다. 기운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예술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활동에서 기본으로 간주된다. 왜 동아시아인들은 유난히 에 집착을 할까. 우리에게 기는 철학·종교·예술·의료·무도나 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연관성을 지니지 않는 곳이 없다. 
 
전에 어느 유명한 프로야구 투수가 미국으로 진출해서 겪은 고충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투구 시 전신이 아닌 팔로만 던지는 선수들이 많고, 또한 속도도 무시무시하더라는 것이었다. 신체 조건에 따라 투구 방식이 다르더라는 것이었다. 왜소한 체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보완 수단이 있어야 경쟁이 된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극동인들이 나 명상을 강조하는 것도 알고 보면 사람의 보이지 않는 역량까지도 쏟아부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물론 외면보다는 본질과 내실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과 기풍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주변에서 보면 우리는 어떤 동기에서든 ’ 개념이나 현상에 대한 이해나 참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의 개념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신비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보니 이에 대한 경계심도 적지 않은 듯하다. 다행히 최근  에 대한 연구가 철학·과학 분야에서도 활발해지고 있다. 내용들을 세세하게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는 상식선에서도 우리에게 긍정적인 가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예술의 범주에서 이것은 놀라운 창조와 생산의 에너지이다. 예술에서 는 다다익선이랄까. 아무리 많아도 해가 되지 않는 유익의 에너지다.  
 
▲ 중력무중력, F.R.P, 263x75x52cm, 1981.
  
조형예술계에서 대표적인 ’ 아티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김영원이 떠오른다. 그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공공미술 모뉴먼트인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조각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창작의 원천이자 매개인 . 그것이 한 작가의 창작에 어떻게 작용하고 또 표현되는지, 그 전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회고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광주 영은미술관(3.25~6.15)에 다녀왔다. 김영원 작가는 199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기공 명상에 기반한 조각과 퍼포먼스를 통해 ‘기(氣) 예술’이라는 장르를 널리 알리기 시작한 장본인이다. 초기에는 명상 포즈의 인물상, 혹은 ‘중력과 무중력’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들을 통해 심오한 정신세계를 형상화시키거나, 해체적 인물상을 통해 존재에 대한 물음들을 화두로 작품을 만들어 왔다. 
 
▲ 기 퍼포먼스 자료 화면.
 
작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기(氣) 예술’을 구체화시켜 나간 양식의 작업들이 이번 전시에 집대성되어 있다. 조각의 경우 선적(禪的) 명상에 기반한 제스추어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긴 적품들이며, 그림의 경우 화폭에 일필휘지의 서법적 퍼포먼스가 생생하게 구현되어 있다. 그동안 실제 퍼포먼스의 기록 영상들도 함께 상영함으로써 ‘기 예술’의 본질과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전시다. 전시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기운이 생동하는 한마당이다. 보통 회화에서 를 주제로 하는 경우는 기운생동의 교과서 같은 사혁(謝赫)이나 석도(石濤) 등의 화론에 근거한 미론을 참고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의 경우는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이행되는 ’ 예술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는 목적이면서 수단이 되고, 혼돈이면서 질서가 된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Cosmic force, Painting on Canvas, 162x130cm(100호), 2019.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 예술 작품들의 명제가 키오스모시스(Qiosmosis)라는 신조어로 통일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과학에 근거한 기(氣) 철학자 홍가이가 명명한 합성어로서 ‘카오스이면서 코스모스인 기(氣)’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다.
 
“들뢰즈가 분자화학적 카오스모시스(Chaosmosis)를 기반으로 코스믹 모더니즘의 예술 이론을 전개하지만, 필자는 동양의 (氣)는 분자화학적 오스모시스(Osmosis) 보다는 순수한 분자보다 더 미세한 양자 레벨의 진동체들의 운동으로 파생되는 파장들의 상호작용, 즉 양자 파장 역학적인 측면에서의 파장역학적 설명이 가능하므로 키오스모시스(Qiosmosis) 이론으로 기공명상 예술을 설명하고자 한다.” (홍가이, 氣오스모시스 신예술론’ 서문 인용)
 
여기서 와 관련해서는 카오스를 혼돈이라는 의미보다는 ‘무한’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석도의 이론을 참조하여 접근한다면 작가의 일필휘지 추상화는 태고의 무법에 법을 부여하는 한 획’ 그 자체이다. 작가의 한 획은 모든 존재의 시작이며 모든 존재의 바탕, 세상에서 빚어지는 모든 현상들의 근원을 이루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림자의 그림자 (꽃이피다) , Bronze, H800cm. 2016.
 
▲  전시장 전경.
 
전시 타이틀이 흥미롭다. 김영원, 한국의 네오모더니스트 - 氣오스모시스 조각과 회화. 우리가 자주 접해 본 포스트모던이 아닌 네오모던이다. 모더니즘의 극복과 탈피를 대명제로 삼은 포스트모더니즘의 post는 탈(脫)로 해석되고, 아울러 이성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모더니즘의 탈피와 해체의 방향성을 띤다. 이에 비해 네오모던의 neo는 보완과 개선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도 작가가 지향하는 기(氣)’ 개념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성중심주의의 근대에서 소외된 감성·육체·주변·여성·수단 등과 함께 ’ 역시 억압의 대상이었다고 보는 것 같다. 결국 극심한 차별과 소외로 치달았던 모더니즘의 한계에 직면해서 새로운 근대를 위해서는 인간 존재의 온전한 회복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 의 복권은 필연이라는 것이다. 논리가 다소 현학적·관념적이기는 하나 는 정신과 육체·혼돈과 질서를 매개시켜 주는 하나의 실재로 탐구되어야 하며, 그것의 창조적·생산적 기능을 온전히 회복시켜야 한다는 논리만큼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 기오스모시스, Qiosmosis.mixed medium on paper, 54x79cm,.2022.
 
김영원 작가의 이름의을 내건 미술관이 김해시 시립으로 설립될 예정이다. 고향 김해시에 대표작으로 간직한 작품들 대부분이 기증된다. 물론 미술관 건립과 운영 일체는 김해시 몫이다. 내년 김해시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전에 맞춰 개관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미술관 개관이 전국체전과 함께 이루어짐으로써 명실공히 문화체전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김해시는 기(氣) 예술의 성지가 될 것 같다. 당연히 우리의 정체성이 생생하게 담긴 기(氣) 예술의 전당’ 설립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 전시장 입구의 작가 모습.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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