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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난한 흰빛의 최후를 수습한, 이 간결하고 맑은 슬픔은
결백을 달이고 달여 치명에 이른 순백의 맑은 독 같아서
험하게 상한 몸속의 사나운 짐승을 제압하는 일에 쓰인다네
차마, 검은 간 한 방울 떨어뜨려
흐린 제 마음 빛으로나 어둡게 받아야 하는 청빈의 송구한 맨살이라네
흰죽(2023)/ 이덕규
아플 때 먹는 흰죽은
정말 아무 맛이 없어서
진짜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먹을 일이 없다.
반찬이라야 검은 간장이 전부.
흰죽은 태생적으로 흰색의 맛이기에
흰죽에게서 무슨 맛이 느껴진다면 필시 간장의 맛일 것이다.
전복죽도 아니고 흑임자죽도 아니고 녹두죽도 아닌
그냥 흰죽은 쌀통 바닥을 박박 긁어 건진 가난의 증거품.
그에게 이 간결한 흰죽을 끓여준 이는 누구일까.
쌀알을 끓이고 끓여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불 곁을 지켰던 이는 누구일까.
순백의 맑은 독이, 험하게 상한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
사나운 짐승을 제압하기까지
그에게 마음 빚을 지운
아니 빛을 지운 이는 누구일까.
아플 때 흰죽 한 그릇 받아들 수 있다면
송구하게도 그럴 수 있다면
한 열흘 세게 앓아누워도 좋으리.
임요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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