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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의 詩요일] 잘 울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생을 산책했던 자
고도를 기다리며/ 김도언 시인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8-19 00:49:54
저기 고도가 간다. 아내와 헤어져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서 저기 고도가 간다. 앙투안도 아니고 조세프도 아니고 리훙도 아닌 고도가, 고도여야만 하는 사람이 가고 있다. 누가 그의 비밀을 경배하는가. 그의 눈동자가 품은 이상과 분노, 비장함과 열정, 그리고 그가 걸어가는 길의 고도(高度)에 대해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조금 아는 자는 오래전에 죽었고 모르는 자들이 지키는 세계만이 융성하다. 저기 고도가 간다. 늙은 정원사가 고도가 가는 길을 본다. 창을 반쯤만 열고 고도의 뒷모습을 본다. 저기 고도가 간다. 빵 반쪽을 먹고 무거운 신발을 끌면서 저기 고도가, 고도로부터 난 길을 간다. 저기 고도가 산비둘기처럼 등에 화살을 달고 가고 있다. 잘 울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생을 산책했던 자, 저기 고도가 간다. 고도가 가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2022)/ 김도언 
 
▲ 해당 시를 바탕으로 빙챗을 이용해 생성한 이미지.
 
고도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곤
아내와 헤어지고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정도다,
그러므로 그가 이것에 대해 말했다고 해서
그것을 발설이나 고백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앙투안과 조세프를 모른다.
리훙도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이 앙투안·조세프·리훙이 아니라고 한 것 역시
그에 대한 단서는 아니다. 이런 나열은
그를 점점 더 모를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기 때문에
그의 비밀은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말할 수 있으면 더 이상 도가 아닌 것처럼
그가 누구인지 말하는 순간 그는 그 단어에서 미끄러져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이 될 것이다.
 
고도가 간다.
화살을 등에 꽂고, 무거운 신발을 끌면서
고도가 간다. 자기 연민 없이, 서두름 없이 가는 고도는
망망대해를 떠 가는 고도(孤島)이고
베케트가 기다리던 고도(Godot)이며
우리가 이미 지나온 오래된 고도(古都)이다.
 
그가 걸어가는 길의 고도(高度)를 알 방법이 없는 것처럼
그는 어느 이름으로든 고정되기를 거부한다.
다만 누군가는 그를 이렇게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울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생을 산책했던 자라고. 
 
임요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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