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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무대에서 쌓아 온 ‘디지털 대한민국’의 명성에 큰 오점이 남게 됐다. 국가 행정전산망에 오류가 발생해 공공기관 민원서류 발급이 17일부터 18일 오전까지 전면 중단됐다. 인터넷은행을 비롯한 주요 금융기관의 신분증(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여권) 진위 확인 서비스도 모두 중단되는 등 차질을 빚었다. 전세계약이나 주택청약 등에 필요한 서류를 떼지 못한 민원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안타까운 상황 또한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행정안전부는 행정전산망이 마비되자 민원실에서 먼저 수기(手記) 방식으로 접수를 받은 뒤 날짜를 소급해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정부에 오래전 업무처리 방식인 수기가 다시 등장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디지털정부가 외형 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민원 행정이 구현되는 현장에서 내실을 기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단 일선 행정복지센터나 민원실에서는 행정전산망 접속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완전 복구됐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월요일 오전 모든 직원이 접속을 해야 과부하가 걸릴지 안 걸릴지 그때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 ‘새올’에서 사용자인증 문제로 장애가 처음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온라인 정부 민원 서비스 ‘정부24’까지 옮겨 붙었다. 전국 행정망이 이틀 가까이 먹통이 됐으니 “구멍 난 전자정부”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행정전산망이 마비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국세청 통합 전산망에서 문제가 발생해 약 2시간30분 동안 전국 세무서 업무가 중단됐다. 행안부가 통신장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촉발된 것이다. 매뉴얼엔 전산망이 멈췄을 때 3시간 이내에 복구토록 명시돼 있다. 이번에 전산망이 종일 멈췄다는 것은 매뉴얼에 허점이 있음을 뒷받침한다. 향후 문제를 촉발한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 등을 대상으로 책임 소재 문제가 불거질 전망이다.
문제는 아직도 민원서비스 마비 사태를 불러온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류가 보안패치 때문인지, 보안패치가 다른 소프트웨어와 충돌을 일으킨 것인지, 아예 다른 부분이 고장 난 건지 등 다방면으로 점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분석 결과 1차 원인으로는 네트워크 장비 오류가 지적되고 있다. ‘새올’과 ‘정부24’ 서버·네트워크 장비 등은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행안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자원) 안에 있다.
국자원은 16일 라우터를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라우터는 네트워크 트래픽 포워딩과 라우팅 기능을 제공한다. 라우터가 트래픽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경우 전산망 사용자인증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해킹이 원인일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행정정보공유시스템은 망 분리가 돼 있으나 안심해선 안 된다.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커 조직 ‘김수키’는 한국수력원자력·한국항공우주산업 등을 해킹한 것을 포함해 국내 무기와 인공위성·우주 관련 첨단기술을 절취한 유명 해킹 공작 조직이다. 국내 공공기관은 물론 가상화폐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정보 등을 노린 해킹 시도를 오랫동안 활발히 해 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국은 이번 행정전산망 오류 발생 사건의 원인을 철저히 밝혀내 전자정부의 취지를 구현해야 한다. 전자정부는 국민에 대한 온라인 민원서비스 제공과 함께 행정에 대한 시민 참여를 활성화시킴으로써 행정의 투명성·신뢰성·대응성·책임성 등을 향상시킨다. 전자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차제에 북한 등의 전산망 해킹 방어에도 철저히 대비해 국가안보와 국민 편익을 높이는 계기로 삼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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