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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언어)은 사피엔스를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한 요체다. 문명사란 말의 역사이기도 하다. 말은 신의 계시 내지 그것을 전하는 신탁(神託)에서 차차 사람의 것,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것이 되어 간다. ‘말’을 하며 살아 온 인류가 18세기 경부터 ‘국어’를 하기 시작했다. 동북아에선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의 일이다.
2500년 전 기록된 주나라 여러 제후국 역사서로 국어(國語)가 있지만, 오늘날 일반명사 국어는 일본의 코쿠고(國語)에서 왔다. ‘국민(국가)의 언어’를 뜻하는 서구 어휘를 한자로 번역해 낸 신조어다. ‘아무개 다이묘(영주)의 사무라이 내지 백성’이던 사람들을 일본국 국민으로 탈바꿈시켜야 했던 시대에 불가피하게 고안된 개념이 코쿠고였다.
코쿠고는 신문·잡지·교과서 등 근대적 활자매체를 통해 국가공동체 구성원의 정서·논리를 교육하는 매개인 동시에 목표가 됐다. 30여 년 전 일본에서 명예로운 학술상을 수상한 단행본 ‘코쿠고라는 사상-근대일본의 언어 인식’이 있다. 저자(이연숙 히토츠바시대 교수)가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했기에 일본인들조차 의식하지 못한 부분을 깨닫고 천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언어 정책에 나타난 공통점과 특수성이 한국인의 눈으로 밝혀진 셈이다.
일본말의 근대화가 일본 열도 및 대만·조선·만주국을 아우를 ‘대동아 공영권’의 논리로 변화·발전하는 과정이 코쿠고의 성장사였다. 일제 말기의 코쿠고 강요는 식민지를 ‘동화·흡수’하려다 나온 무리수였다고 할 수 있다. 서구 열강이 그런 시도를 아예 안 한 것은 식민지를 원자재·노동력 조달지로 여길 뿐 원주민을 통합의 대상으로 여기진 않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들어 맹렬하게 서구를 학습하며 모어의 현실에 절망한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영어공용화’론이 부상하지만 러일전쟁 전후로 대중 미디어의 시대를 맞으면서 수그러든다. 각종 활자 매체를 채운 콘텐츠로서의 코쿠고가 그럭저럭 성숙한 덕분이다. 이후 대량의 일제(日製) 한자어가 중국·조선에 흘러들어 각각의 표준어(국어) 고급 어휘·표현의 중심을 이루게 됐다.
어색하고 부실하던 국한문 혼용체의 우리말이 현대인에게 낯설지 않는 문체로 급진화한 게 대략 그때부터다. 일제시대 코쿠고 정책의 의식·무의식적인 벤치마킹 결과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펼쳐졌다. 국어에 이어 국사·국학이 정착하면 국민 만들기 과업은 대부분 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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