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씨가 회장으로 있는 광복회가 최근 국가보훈부를 향해 내년 광복 80주년 사업 예산을 독립유공자 단체인 광복회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편성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범국가적 행사로 그 주체는 국민이어야 한다. 특정 단체에 귀속된 행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마치 광복회가 ‘광복’에 관한 한 특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광복회는 ‘누구를 위한 광복 80주년 행사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보훈부가 내놓은 광복 80주년 행사 발표 자료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광복 80주년 행사한다면서 ‘독립’이라는 단어 하나 없이 ‘범국민 감사캠페인’ ‘국민통합 문화예술축제’를 추진한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독립유공자 빼고 광복 80주년 행사를 치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훈부는 행사와 관련한 모든 기념사업이 ‘독립운동 및 광복의 가치를 알리고 계승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범국민 감사캠페인’의 경우 독립운동가 및 순국선열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국민 감사 캠페인을 전개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국민통합 문화예술축제’에서 개최되는 음악회·뮤지컬 역시 독립운동·광복을 주제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독립’이라는 단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독립유공자 배제’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하는 광복회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봐도 억지가 느껴지는 ‘몽니’로 볼 수밖에 없다. 혹은 행간에 당연히 담겨 있는 ‘독립’의 의미를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읽어 내지 못할 정도로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보훈부가 내년 광복 80주년 사업 예산 97억4000만 원을 광복회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편성했다면서 이를 두고 “극히 유감”이라고 한 광복회의 비판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광복회의 주장은 일방적 왜곡에 불과하다”는 보훈부의 해명이 아니더라도 그간 사사건건 윤석열정부와 대립해 온 광복회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번 예산 편성 건 역시 ‘비판을 위한 비판’이거나 혹은 정치적 중립에서 벗어난 편향적 시각에서 비롯된 ‘투정’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올해 8월15일 광복절에 광복회는 정부의 독립기념관장 인사 등에 반발하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했다. 독립운동가와 후손·유족들로 구성된 광복회가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1965년 광복회 창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앞서 이종찬 광복회장은 “정부가 근본적으로 1948년 건국절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광복회는 광복절 행사에 나갈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발한 것도 ‘1948년 건국절’을 추진하기 위한 정부의 포석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건국절을 제정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게다가 건국절 논란은 건국 연도를 1919년으로 볼 것인지 1948년으로 볼 것인지 아직 정계와 학계에서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광복회는 정부가 ‘1948년 건국절’을 밀어붙인다고 가정하고 지레 반발하고 있는 셈이다.
광복회의 반발은 광복회학술원 예산 6억을 삭감했다는 비판으로도 표출됐다. 하지만 지난달 열린 광복회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1948년 건국절 주장은 친일파’라고 단정하는 이 회장의 발언을 보면 과연 이 학술단체가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마땅한 집단인지 의심케 한다.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아직 논란 중인 사안에 대해 꽉 막힌 불통의 역사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광복회가 ‘광복’에 관한 한 정부와 국민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갖고 있다는 의식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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