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일용 엄니’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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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땅] ‘일용 엄니’ 김수미

박병헌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06 06:30:11

▲ ‘일용 엄니’ 김수미 씨의 영결식이 열린 지난달 27일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이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TV 캡처

MBC 드라마 ‘전원일기’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국내 최장수 드라마다. 농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1088회나 안방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무려 22년간 주연과 조연들이 거의 바뀌지 않으면서 꾸준하게 출연한 사실도 기네스북 감이다. 왕년의 인기를 의식해 요즘도 케이블 TV에서 방영되곤 한다. 양촌리 농촌조합회장 최불암·김혜자 부부부터 큰아들 김용건·고두심 부부와 둘째 아들 유인촌까지 톱스타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 중 감초 역할을 맡았던 ‘일용 엄니’ 김수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김수미가 ‘일용 엄니’ 역을 맡았을 때 일용이 박은수보다 세살 어린 31세였다. 젊은 배우에게 노역을 맡기는 것은 제작진의 모험이었지만 결과는 대박이었다. 시청자를 사로잡은 인물은 ‘일용 엄니’였다.

김수미는 홀몸으로 일용이를 키우며 김회장네 덕을 보고 사는 조연으로 출연했으니 그 역할로 국민배우가 될 줄은 몰랐을 터다. “일용이 너 이 눔 시키” “인생 사는 계산이 안 맞는겨”라는 ‘일용 엄니’의 구수한 사투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1970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한 그에게는 이상한 배역만 들어왔지만 “연기로 승부 보겠다”고 마음먹었고 드라마 ‘아다다’ 등에서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으로 연기상을 휩쓸었다. 중년을 넘어서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김수미였다. 32살에 60대의 ‘일용 엄니’ 역할을 맡았듯 나이 든 여성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내는 독보적 영역을 개척했다. 특유의 음식 솜씨만큼이나 욕을 가장 ‘맛있게(?)’ 하는 배우였다.

입담 좋은 예능스타로 웃음을 선사했고, 요리 프로그램에선 남다른 손맛도 뽐냈다. 드라마 촬영 때에는 대형 전기밥솥에 직접 만들고 담근 반찬과 김치를 싸들고 와 스태프 수십 명에게 밥을 해 먹이는 후한 인심으로도 유명하다. 없는 살림에도 집에 들른 보따리 장수들까지 밥 먹여 보내는 친정 어머니의 인심과 후덕함을 보고 자란 덕분이다.

예능 프로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도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 주는 푸근한 엄마였다. 탤런트·개그맨 등 연기자들에겐 모두의 엄마로 통했다. 연예계에 그가 떠난 엄마의 자리를 메꿀 인성이 과연 있을까. ‘일용 엄니’의 빈 자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지는 조락의 계절이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병헌 취재본부장

박병헌 기자 bhpar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