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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감정 쓰레기통’이란 말이 널리 쓰였다. 일방적 공감을 요구하며 상대를 소모시키는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이 일종의 도덕적 의무였지만, 정신적 에너지와 건강의 중요성이 주목받자 감정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기며 이런 표현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처지인 사람끼리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도움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전에 정신 장애를 호소하는 이용자들이 찾는 온라인 게시판의 운영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게시판은 겉보기엔 멀쩡하게 운영되고 있었지만, 운영자는 일부 이용자들이 올린 극단적 선택 관련 글과 사진을 지우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을 감당하고 있었다.
집단상담 수업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들었다. 알코올 의존 등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자조집단을 구성할 때, 구성원 간 상호작용으로 오히려 상처가 악화될 가능성을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남을 살피지 못한 일방적 하소연이 나타나곤 한다. 숙련된 상담사가 아닌 경우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런 넋두리는 경우에 따라 개인의 심리치료 과정에서 필요한 단계이기도 하다. 격앙된 감정을 털어놓아 진정하고 상담사와 차분히 대화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기자도 대학생 때, 평범한 사람들 역시 넋두리나 하소연이 필요할 때가 있는 만큼, 이들의 감정을 받아주고 무해한 방식으로 답변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적절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에는 국내 상담 인프라가 부족하고 상담에 여러 부담이 따랐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정했지만, AI의 등장으로 새로운 길이 열렸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보여주는 ‘공감 능력’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인터넷에서도, 지인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들린다. 직장 선배나 친구들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AI와 대화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AI가 이 정도로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개입하게 됐다는 사실은 놀랍다. AI가 누군가의 감정적 판단에 관여하게 된 시대에, 그 긍정적 면을 적절히 활용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특히 AI는 인간처럼 정신적으로 소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AI를 상담용 창구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장점은 비슷하다. 도덕적 비난을 자제하고, 지치지 않고, 사용자가 원할 때만 반응하며, 오해하거나 상처받지 않는다. 오해가 생겨도 해명할 수 있다. 감정이 없는 기계가 오히려 사용자가 가장 안전함을 느끼는 대상이 된 셈이다.
물론 반대의 연구 결과도 이어진다. “AI가 이용자의 나르시시즘을 강화한다”거나 “과도한 아첨이 정서 의존을 키운다”는 연구들이다. 해외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극단적 선택을 AI가 부추겼다며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물론 AI는 틀린 정보를 제공할 때도 많고, 공감과 조언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전문 상담사 역할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는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감정을 비감정적으로 받아 되돌려 주고 사고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해 진정시키는 과정에서는 분명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악조건이 많다고 해도 AI의 매력을 포기하기 힘들다.
상담 등 현실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임시로 받아내는 미봉책 역할은 가능하다. 과거 게임 규제 논의처럼 성급한 낙인과 광범위한 규제 대신, AI 도입에 따른 현실적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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