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운정신도시와 고양 삼송·덕은지구 등 경기 서북부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최고 49층에 달하는 초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를 책임지는 소방 현장의 시계는 여전히 과거에 멈춰 서 있다.
높은 건물 주민의 생명줄 역할을 해야 할 소방 고가사다리차의 한계는 명확하다. 하늘 높이 솟은 주거 공간에서 불길과 유독가스가 치솟을 때 외부에서 닿을 수 있는 물리적 손길은 15~20층 이다.
소방 설계 및 건축 방재 체계상 30층 이상 준초고층 및 초고층 건물은 ‘외부 사다리차로 끄는 건물’이 아니라 ‘건물 자체 시스템으로 버티고 내부 진압으로 끄는 건물’로 설계돼 있다. 건물 자체 진압 설비(스프링클러, 옥내소화전, 고압 송수펌프 등)와 비상용 승강기, 그리고 층별 피난안전구역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불법 주정차나 단지 내 조경석 탓에 사다리차 진입로 확보부터 난항을 겪기 일쑤다. 화재 현장에서 자체 스프링클러 밸브가 잠겨 있거나 제연설비가 오작동하는 순간 고층 건물은 그 즉시 연기로 가득 찬 ‘수직 탈출 불능 지옥’으로 돌변한다.
정동헌 파주소방서 생활안전팀장은 “건물 허가는 규정대로 났지만 대당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70m급 첨단 특수장비는 예산 문제로 일선 소방서마다 충분히 확충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인허가 관청과 정부가 고층·초고층 건물의 난립을 허가해 주면서 정작 유사시 시민의 목숨을 건져낼 대응 장비와 방재 인프라 구축은 ‘지자체 재정 탓’ ‘예산 타령’만 되풀이하고 있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소방대원들의 헌신과 용기만으로 49층 높이의 거대한 화마를 이겨낼 수는 없다. 장비 없는 현장 대응은 소방관에게는 사지로의 내몰림이며 고층 주민들에게는 시한폭탄과 다름없다.
초고층 숲이 비극적인 재앙의 덫으로 변하기 전에 정부와 국회는 예산 핑계를 멈추고 현장의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광역 단위의 특수 진압 장비 확충 지원은 물론 아파트 단지 내 소방도로 확보와 세대별 소방시설에 대한 강도 높은 상시 불시 점검 체계가 당장 시행돼야 한다.
화마는 결코 인간에게 예산과 제도를 정비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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