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심비’가 새로운 소비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가격대비 마음(心)의 비율’을 일컫는 신조어인 가심비는 값을 치르면서 심리적 만족도를 중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라 부르며 가격과 성능만을 고려했던 기존의 소비풍토에서 한 단계 진화한 개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평소 좋아하는 아이돌그룹과 관련된 캐릭터 상품을 구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거나 수익금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되는 가게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행위 등이 가심비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불신·불황·불안 등 이른바 ‘3불 시대’를 맞아 소비를 통해 만족과 안심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짙은 사회적 분위기가 소비문화에 반영된 결과로 분석했다.
가심비를 중시하는 풍토는 유통업계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온라인쇼핑몰 ‘G마켓’에서는 헬리캠·드론 등 관련 카테고리 상품매출이 전년 대비 40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나 장비에 부착해 움직이는 이의 시선을 따라 영상 녹화가 가능한 액션캠 판매량도 28%나 늘었다. 이들 제품은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취미 생활에 이용되는 기기들이다.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 인기…유해성 논란 후 없어서 못 파는 유기농생리대
최근 쥬얼리 업계에서는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주로 연인이나 부부 간에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현상이다. 서울의 한 대형 백화점 제이에스티나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하랑 매니저는 “보통 연말에 연인에게 선물하기 위한 남성 고객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본인이 직접 착용하기 위해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평소 본인에게 투자하는 것에 인색한 우리나라 여성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본인을 위한 셀프선물을 하는 여성의 연령대는 20대부터 40~50대까지 다양한 편이다”고 설명했다.

백화점 G쥬얼리 매장 직원 윤지은(여·가명) 씨는 “손님 10명 중 2~3명 정도는 본인을 위한 구매를 하는 여성 손님들이다”며 “미리 제품에 대한 정보를 숙지한 채 찾는 손님들도 있고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다 구매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구매 후 환불이나 교환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언급했다.
화려한 셀프선물만 가심비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유해성 논란이 빚어진 제품군의 경우, 보다 믿을 만한 제품을 선택하기 위해 높은 값을 치르는데 주저하지 않는 풍토도 가심비의 일부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용품인 생리대다.
지난해 발암물질 성분이 포함된 생리대 파동이 불거진 뒤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을 중심으로 보다 유해성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은 생리대 판매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생리대 논란이 불거진 8~9월 이후 면 생리대 매출이 355%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비슷한 시기 소셜커머스 티몬에서는 유기농소재 생리대 매출이 1002% 치솟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 한 대형마트 생리대 코너 담당직원은 “식약처에서 인체실험을 거쳐 생리대 안전성에 대해 발표해도 여전히 국산 생리대에 대한 불신이 깊은 소비자들이 많다”며 “비싼 외국산 유기농이나 면 생리대는 아직까지도 없어서 못 파는 정도다”고 소개했다.
“스트레스 과다 현대인, 가심비 트렌드 당분간 지속될 것”
가심비의 또 다른 특징은 기부 색채를 지닌 소비문화다. 굳이 필요하지 않고 타 제품들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비싸도 제품을 판매하는 취지가 구매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매출의 50% 이상을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하는 사회적기업 마리몬드의 경우 이 같은 소비풍토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20·30대가 주 타깃인 이곳에서는 의류·사무용품 등을 감성적인 디자인을 가미해 판매하고 있다. 점차 인기가 높아지면서 온라인몰에서 오프라인몰까지 판로가 다양해진 상태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오프라인매장 마리몬드라운지를 찾은 김효정(여·30)씨는 “평소 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하기 쉽지 않은데 필요한 물품이 있을 때나 굳이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기부한다는 생각으로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객 이주은(여·23)씨도 “홧김비용으로는 먹는데 주로 쓰는 편이다”며 “먹는 것은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만 단지 그때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면 그 만족감이 더 오래가서 온라인에 신제품이 출시되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마리몬드라운지 이국주 매니저는 “가심비라는 트렌드에 맞춰 매출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기업이 지향하는 사회적 목표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자연스레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녹아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유현정 충북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사회변화가 활발한 만큼 소비트렌드의 변화도 이와 부합한다”며 “가심비는 억눌렸던 소비욕구를 분출시키는 ‘욜로’트렌드에서 파생된 것으로 소비 후 밀려오는 후회와 허탈함을 보완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과거보다 자기표현이 자유로워진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최고의 가치성과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소비자들의 본능이 반영된 현상이다”며 “소비한 제품을 통해 개인의 다양성이 잘 반영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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