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매체 ‘적폐청산위’는 숙청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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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맹기의 언론 톺아보기]

KBS 진미위·MBC 정상위·연합뉴스 혁신위는 ‘불법 조직’
정확성·공정·진실 무시… 권력 입맛대로 칼질하다 ‘유죄’

조맹기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2-22 10:10:13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한다. 칼은 무력을 뜻한다.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하거나 권력을 정당성 없이 사용했을 때는 독재로 변한다. 시간이 지나 그 권력이 중지되면 치열한 검증을 통해 진실을 밝힌다. 이 경우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권력에 도전했다는 뜻이 아니다. 훗날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결국은 펜이 무력보다 강하게 된다는 의미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노총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촛불혁명’이란 구호로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구성원을 단죄하기 시작했다. 이 정부 때 ‘광우병사건’, 박 정부 때 ‘세월호 7시간’은 지나고 나니 별 내용이 없었다. 전혀 정당성 없는 억지였다. 가짜뉴스인 셈이다. 관련자들에게 정보의 ‘정확성·공정·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문 정부는 공공기관마다 적폐청산위원회를 설치했다. 사회주의 국가에나 있을 법한 숙청기구다. KBS는 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 MBC는 정상화위원회, 연합뉴스는 혁신위원회 등 공영언론 인사들에게 완장 하나씩 주고, 칼을 휘두르게 했다. 이들 완장 찬 군상은 지위를 얻고, 그에 걸맞은 충성심을 보여줬다. 마치 프롤레타리아독재 시대가 온 것처럼 행동했다. 그게 자유주의·시장경제의 헌법정신에 맞을 리가 없었다.

KBS 진미위는 2018년 6월 이사회에서 여당 측 이사들만으로 설립안을 통과시킨 후 10개월 동안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KBS에서 벌어진 ①방송 공정성·독립성 침해 ②부당인사·부당노동행위·부정청탁 사례 등에 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등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정지환 보도국장을 해임하는 등 17명에 대한 정직과 감봉, 주의 촉구 등 조치를 내렸다.

진미위는 양승동 사장, 김상근 이사장, 정필모 부사장(현, 민주당 국회의원), 김의철 KBS비즈니스 사장(현 사장), 김덕재 제작본부장(현, KBS아트비전 사장), 박재홍 시청자본부장(현, KBS아트비전 감사), 그리고 진실과미래 추진단 10명으로 구성되었다.

피해자들은 2021년 1월 진미위의 중징계 조치를 문제 삼아 ‘부당정직 구제요청’ 사법투쟁을 시작했다. KBS공영노조는 “사측이 진미위 운영 규정에 직원들에게 불리한 징계 사항을 포함했고, 과거 보도를 조사해 보복성 징계를 한 것”이라고 항의하며 고용노동부에 고발장을 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으로 지루한 법적 공방을 이어갔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2심 판결 결과 양 사장은 진미위 운영 규정을 제정하면서 KBS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는 혐의로 기소돼 1심과 같은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노동법상 ‘1사 1감사기구’를 두게 되어 있는데, 불법으로 진미위를 설치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진미위 운영 규정은 취업규칙에 해당하고 일부 내용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피고인에게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관한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심 판결은 “사내 변호사와 외부 법무법인의 자문을 거쳤지만, 운영 규정의 전반적인 법률 검토를 맡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양 사장의 “진미위 운영 규정은 과거 정부의 언론장악으로 인한 공정성 침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으므로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라는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적폐청산 규정의 진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KBS 진미위 사건은 다른 여타 공영방송의 적폐청산위는 물론이고, 유사한 공기업위원회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이 희미한 문 정부는 선출직의 텃세를 많이 부려왔다. 완장 찬 이들은 임명직을 과도하게 홀대했다. 그 운용방식은 과거의 신분집단, 즉 권력을 나누는 과정을 선호했다. 한쪽은 권력을 주고 다른 쪽은 충성을 강요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기록의 문화이다. 서구 지성사는 철학과 레토릭으로 양분된다. 시대가 평온할 때 철학이 우세하고, 난세에는 레토릭이 적격이다. 이 논쟁은 기원전 5세기 시칠리의 시라큐스에서 코락스와 그의 제자 티시아스에 의해 꽃을 피웠다. 권력에 의존한 독재자 트라시부루스가 그리스 시민의 땅을 무차별적으로 몰수했다.

당시 독재자가 사망하자 땅을 찾기 위해 시민들은 수사학을 배우게 되었다. 그 특수를 노린 것이 이들에게 ‘레토릭술’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하였다. 그 기록물을 익힘으로써 시민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권력은 칼이다’는 말이 맞다. 그 후 그리스 시민은 레토릭 학문을 사랑하게 했고, 역사가는 권력이 아닌 펜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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