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인 1959년 서울 수도여중 체육교사 석봉근은 배드민턴을 가르치기 위해 장비를 구하려고 청계천 고물상을 기웃거리다가 줄도 없이 버려진 활 한 자루를 주워 들었다. 배드민턴 대신 양궁을 가르치기로 마음먹고 며칠간 고물상을 뒤진 끝에 활과 화살뿐 아니라 일본어로 된 양궁 서적도 찾을 수 있었다. 석 교사가 주워 든 이 활은 한국 양궁 역사의 위대한 시작이었다.
그는 1963년 한국 최초로 서울 성동중학교에 궁도부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며 양궁을 전파하는 데 힘썼다. 그가 한국에 양궁을 알렸다면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에 오른 18살 여고생 김진호는 한국 양궁을 세계에 알렸다. 양궁의 씨가 뿌려진 지 20년 만이었다.
로스앤젤레스올림픽 개막을 1년 앞두고 열린 1983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6관왕에 올랐던 김진호가 정작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애석하다. 활의 고장인 경북 예천 출신의 김진호는 36년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여자 양궁의 원조 신궁(神弓)이다.
한국 여자 양궁이 파리올림픽에서 전인미답의 10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올림픽 무대를 처음 밟은 ‘초짜’들이 이뤄 낸 쾌거라서 더욱 대견스럽다. 김수녕·기보배 등 역대 신궁들뿐만 아니라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올림픽 선발전 경쟁자들까지 모두가 만든 아름다운 역사다.
양궁 단체전이 생긴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무려 36년간 세계를 제패했고 신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전에도 양궁 단체전이 있었다면 10연패 이상의 업적을 냈을 한국 여자 양궁이다.
올림픽 10연패 신화의 완성엔 투명한 선수 선발 시스템이 밑거름이 됐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태극마크를 다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새내기부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까지 계급장 떼고 실력만으로 승부를 펼쳐 주요 국제대회에 나갈 선수를 뽑기 때문이다. 또한 선발전을 통과한 국가대표를 절대 바꾸지 않는다. 오로지 정량적 요소로만 우열을 가린다.
누구나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는 정정당당한 승부의 ‘원칙’은 바로 한국 여자양궁의 힘이다. 변칙이 난무하고 원칙이 귀한 시대여서인지 양궁 대표팀의 원칙 있는 10연패가 더욱 빛난다. 선배들의 업적을 이어 가야 하는 부담감을 떨쳐 내고 10연패를 이룬 소녀 궁사들이 멋지다.
박병헌 디지털뉴스 국장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