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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냉면집이 은근히 많은 도시다. 그것도 맛있는 평양냉면집이 유달리 많은 곳이 바로 대전이 아닐까 싶다. 역사가 오래된 원도심 동구와 중구는 물론 웬만한 지역마다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쏠쏠한 냉면집이 한두 곳은 꼭 있다고 한다. 이유를 찾아봤더니 대전에 이북 출신 실향민이 많은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전은 한국전쟁으로 대대적인 인적 재편이 이뤄졌다. 경부선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로 전국에서 피난민이 몰려들었고 북한 출신도 적지 않게 내려왔다. 국군과 유엔군이 이기면 고향이 있는 북쪽으로, 밀리면 피란지인 부산으로 내려가기 편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전 인구 144만 명 중에 이북 출신 실향민은 몇 명이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세대(80세 이상)가 5만~7만 명, 2세대까지 더하면 16만 명 정도라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 분단이 고착화하면서 북한에서 피난 온 수많은 사람이 귀향하지 못하고 대전에 정착한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맛, 바로 냉면이다. 온몸의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대전의 명품 맛집 숯골원냉면집을 찾아 인기의 비결이 무엇인지 들어 봤다.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정성인 것 같아요. 대대로 내려오는 맛을 유지하는 것도 가장 중요하구요.”
숯골원냉면 윤선 대표의 말이다.
이 가게는 1920년 1대 창업주인 박재록 씨가 평양에서 숯골원냉면의 전신 평양 모란봉 냉면을 개업한 이후 2대 박대섭 씨가 1940년 가업을 이어받았다. 1954년 남한으로 피난 온 3대 박근성 대표는 대전 숯골(대덕 탄동면)에 정착한 뒤 가업을 이어 닭 육수와 동치미를 배합한 모란봉 냉면의 맛을 재현해 ‘숯골원냉면’을 개업했다.
부친 박근성 대표의 뒤를 이어 4대째 가업을 잇게 된 박영흥 대표는 1991년 신성동으로 이전해 부인 윤선 대표와 함께 숯골원냉면을 경영하고 있다. 현재는 아들과 며느리도 냉면의 역사와 전통을 물려받기 위해 가게 일을 돕는 등 경영에 일조하고 있다.
냉면은 차가운 음식이란 인식이 강한데 상호명에 ‘숯골’을 넣은 이유를 윤선 대표에게 물어보았다.
“아버님이 일사후퇴 때 남한에 내려왔는데 피난민들이 찾은 동네가 숯을 굽는 동네였다고 해요. 그래서 가게 이름을 숯골원냉면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사시사철 손님 발길이 끊기지 않지만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더욱 찾는 사람이 많은 이곳,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자리 잡고 있는 숯골원냉면이다.
호록호록 면 치기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와 주변을 살펴봤다. 국물을 들이켤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에 맛에 화답하는 ‘진실의 미간’이 나타났다. 평양냉면의 입문자도 단숨에 마니아로 만들어 버리는 숯골원냉면의 솜씨, 그 맛 내기의 비결이 궁금했다.
“평양냉면은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요. 면부터 시작해 육수까지, 게다가 전통을 잇기 위해선 그 맛을 꾸준히 이어 가는 게 중요합니다. 숯골원냉면의 특징은 5대째 동치미 국물로 냉면 육수를 만들고 있다는 거죠.”
“육수의 주재료는 동치미 국물과 닭고기예요. 일단 동치미 국물과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듯이 닭고기를 넣고 닭발을 추가로 더 넣어서 육수에 담백함을 더합니다. 부가적으로 양파·무·대파를 넣습니다. 여기에 꼭 빠지지 않는 게 있는데요, 대대로 내려오는 씨간장을 꼭 넣어야 합니다. 120년 된 씨간장인데 모든 재료를 넣고 마지막으로 이 간장을 넣으면 육수가 완성됩니다.”
100년의 전통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할머니 때부터 내려온 간장,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120년의 시간을 보낸 씨간장…. 정말 귀한 맛의 비법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조상이 남겨준 보물을 넣어야 고품격 육수가 완성된다.
냉면 맛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동치미를 만들기 위해 매년 11월이면 한 달간 무 2만 개를 구입해 동치미를 담그고, 배추김치도 6000포기 정도 만들어 보관한다고 윤 대표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를 진행하는 날이기 때문에 재료 하나하나와 보관 방식에도 신경을 쓴다고 덧붙였다.
“저희 가게 밑에는 보물창고가 있어요. 5년 전만 해도 동치미와 배추김치를 땅에 묻어 시원한 맛을 냈지만 최근 몇 년간 기온이 올라가면서 동치미 맛이 변하는 것 같아 지하에 저장창고를 설치했어요. 특수 제작한 세라믹 원통을 이용해 동치미를 보관하고 있는데 육수 맛도 시원하면서 맛있고 무도 아삭한 맛을 유지할 수 있어 좋아요.”
더운 여름 동치미 국물에 보들보들하고 쫀득한 메밀면을 한입 물면 인생음식 리스트 0순위에 오른다는 그 맛이 바로 대전의 명물 숯골원냉면이다. 오로지 미각에 의해 찾은 고향의 맛, 구수한 메밀면에 닭고기·달걀 지단이 고명으로 올라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거기에 깊고 감칠맛 나는 육수가 들어가면 백 년의 맛이 완성된다.
사시사철 손님 발길이 끊기지 않고 있는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속이 꽉 찬 이북식 왕만두이다. 양배추의 아삭한 식감이 일품인 평양식 왕 만두는 윤 대표가 추가한 메뉴다.
이북식 만두는 두부의 비율이 높아서 담백하고 삼삼한 맛이 특징이다. 삼삼하고 시원한 평양냉면과 담백하고 부드러운 만두, 천생연분이라 자랑할 만큼 궁합이 좋다. 주먹만 한 왕만두에 간장을 살짝 뿌려 한입 물면 입안에서 고소함이 폭탄 터지듯 쏟아진다.
“요즘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단짠단짠한 맛에는 평양냉면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남편과 둘이서 전국에 있는 냉면집을 다 돌아다니며 냉면 탐방을 했어요. 근데 냉면을 다 맛보고 돌아오는 길에 역시 우리 집 냉면이 맛있구나 싶었죠.”
“그 후로 지금의 맛을 유지하고 전통성을 지키기로 마음먹고 기본에 충실하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100년의 전통을 잇고 있는데, 소명감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숯골원냉면 많이 사랑해 주신 고객님들, 그리고 저희 가게를 꾸준히 찾아주시는 단골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전통을 잇는 가게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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