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김성주는 김일성이 아니다
김성주는 1937년 6월 초에 있었던 보천보 전투에도 제6사단장 김일성 휘하 부대의 일개 대원으로 참가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한동안 기를 쓰고 제6사단장 김일성이 북한의 김일성과 동일인이라고 주장하며 그 전적을 과장하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나이가 다르고 신원도 다르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터졌을 무렵에 장아청이 오가자에 있는 친구 이선일에게 보낸 편지에는 “나와 김성주는 지금 동북항일연군의 제6사단 김일성 부대에서 싸우고 있으니 자네도 동지들을 데리고 와서 가세해 달라”는 권유의 말이 적혀 있었다. 이 편지도 김성주가 김일성 부대의 일개 대원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1937년 11월에 제6사단장 김일성이 세상을 떠나고 그 후계자인 또 다른 김일성이 제2방면 군장이 되었을 때에도 김성주는 계속 김일성 부대의 대원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가 없다.
김성주의 아내가 된 김정숙
1940년을 전후해 일본 군·경의 합동 작전으로 동북항일연군이 궤멸되고 1940년 12월 말 제2방면 군장 김일성이 부하 20여 명을 데리고 소련의 원동으로 도망친 것과는 별개로 김성주·김정숙(金靜淑) 등 일행 16명은 만주 훈춘을 거쳐 하바롭스크 남쪽 보로실로프(Voroshilov)로 들어갔다. 그 전에 그들이 훈춘 산악지대에서 야영을 하며 머무는 동안 김성주와 김정숙은 예식도 없이 선언하듯 전격적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김정숙이 임신 중인 사실을 알게 된 최현(최용해의 아버지)이 서둘러 김성주를 설득한 것이다.
김정숙은 보로실로프에 도착한 후 1941년 2월16일 첫아들 김정일을 출산했다. 김정일의 소련 이름은 ‘유라 일세노비치 김’이었다. 그 후 이들은 88저격여단이 창설되면서 하바롭스크 동북부에 있는 캠프 바스코예(Camp Vaskoye)에서 평양으로 올 때까지 살았다.
김정숙은 1917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고 1949년 9월에 평양에서 사망했다. 김성주는 해방 후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 이곳에서 특수 훈련과 교육을 받았고 그 사실을 늘 자랑삼아 말했는데 당시 그가 배운 것은 군사 참모학·정보학·통신·낙하산 훈련 같은 것들이며 철저한 막스·레닌주의 교육을 받았다. 훈련은 소련 연해주 지구 경비사령부 소속 교관들에 의해 실시되었다.
한반도에 조선공산당이 조직되다
약 1세기에 걸쳐 지구촌을 돌풍처럼 휩쓴 공산주의 사상은 그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의 문명을 파괴했다. 1919년 3·1 독립만세 사건 이후 좌절과 실의에 빠진 우리 민족에게도 공산주의 사상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프롤레타리아 해방·약소민족 해방’ 같은 구호는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상당한 매력이 있었다.
1925년에 드디어 서울에 조선공산당이 조직되었고 이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념적 구조나 이론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오직 투쟁 구호와 행동 방침만을 앞세우고 뛰어들었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은 3년이 채 못 되어 일본의 대대적인 검거로 와해된 후 8·15광복 때까지 재건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하에 숨어들어 활동을 계속했는데 그 주역은 박헌영·오기섭·주영하·이강국·김삼용·이주하·이승엽·허성택 등이었다.
한편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가입했던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중국공산당의 일국일당(一國一黨) 원칙에 따라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산하 각급 조직에 가입했고, 그 이후로 만주에서는 한인들의 독자적인 공산당 조직이 영원히 사라졌다. 국내에서는 지하로 숨어들었던 공산당이 8·15광복 후 박헌영을 주축으로 재건돼 1946년 11월에 ‘남조선노동당’으로 명칭을 바꿨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 우리 민족은 국내외에서 여러 형태로 독립 투쟁을 전개했는데 특히 민족주의자들의 독립 투쟁은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새롭게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당시 민족주의자들 가운데 후세에까지 용명을 떨친 사람들로는 만주에서는 김좌진·홍범도 장군, 그리고 시베리아에서는 김일성 장군을 들 수 있다.(이때의 김일성 장군은 본명이 김광서이며 북한의 김일성이 아닌 다른 인물이다.) 지금부터 이 글에서 언급되는 김일성은 애국투사였던 진짜 김일성, 즉 김광서가 아닌 가짜 김일성으로 북한의 김일성도 그 가짜 김일성 중의 한 사람이다.
북한의 역사 날조
북한에서 주장하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사의 대부분은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는 없었던 일을 날조한 것이며, 둘째는 있었던 일을 변조하거나 미화한 것, 셋째는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자기가 한 것처럼 도용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문제가 되는 사건이 ‘보천보 전투’인데 2002년 8월 초에 한국의 김대중 정권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보천보 전투를 비중 있게 소개하여 물의를 일으켰고 또 학계 일부에서는 일제강점기의 공산 계열의 독립운동도 사실(史實)로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어처구니없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대한민국의 북한학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과오 중의 하나가 철저한 연구 분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북한이 날조·미화한 문헌과 자료를 비판 없이 접수하는 태도이다. 이것이 바로 요즘에 와서야 문제가 되고 있는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것이다. 특히 재독 거물 간첩 송두율과 그를 추종하는 사이비 학자들은 대한민국의 진실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부정적인 면을 극대화하며 북한의 모순과 허위를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 등 날조된 역사를 사실(史實)로 인정하고 있다.
가면을 쓰고 살았던 김성주의 인생
김일성(본명 김성주)은 평생 남의 탈을 쓰고 살았다. 그가 그토록 무서운 독재자가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어쩌면 이 가면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속이지 않은 것도 있다. 생년월일과 부모와 조상들의 이름 등등이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과거의 행적은 거의 다 거짓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혈통을 강조하기 위하여 ‘백두 혈통’을 내세운다. 그들은 김일성(김성주)의 증조부 김응우가 1866년(고종 3년)에 대동강에 나타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격퇴하는 데 선봉장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와 그의 아들 김보현(김성주의 조부)은 가난하고 평범한 농부였다. 그리고 김성주의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공산주의 혁명 투사로 추앙하지만, 사실 김형직은 한의사로서 만주에서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이란 민족진영의 대원으로 활약하다가 공산당원들에게 암살당했다.
김성주 자신은 주로 만주 장백현 일대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의 비적(匪賊)으로 양민 약탈에 잔뼈가 굵었고, 그의 처 김정숙 또한 백두산에서 싸운 일이 전혀 없다. 그들의 아들 김정일은 분명히 소련의 극동지역 경비사령부 야영지에서 1941년 2월16일에 태어났고 그들이 말하는 백두산 밀영(密營)에서 출생하지 않았다.
진실과 허위를 배합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또 어려운 일을 추가적으로 해야 한다. 그 하나는 역사를 날조하는 작업이요 다른 하나는 그 허위를 알고 있는 사람과 알 만한 사람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김성주는 중국공산당이 만주를 회복하기 위해 조직한 동북항일연군에서 일개 대원으로 복무했으나 조선 독립이나 민족 해방을 위해 투쟁한 일은 단 한 건도 없다. 어렸을 때는 깡패요 청년 시절에는 동족을 괴롭히는 공산 비적으로 살아 온 그가 ‘만고의 애국자·항일 영웅·민족의 태양’으로 둔갑해서 49년간(1945-1994) 독재자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는지 역사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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