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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상황에 긴장했을 선배는 안전 상태를 직접 눈으로 점검하기 위해 운전실의 창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나를 보고 놀란 용범 선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내가 빙긋 웃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강무훤! 이제 괜찮은 거야?”
선배가 어느 때보다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 손을 꼭 잡았다.
“한번 나와 봤어요. 달까지는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내가 거짓말을 했다.
“그래. 잘했다. 참 잘했다.”
선배는 진심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허허 웃었다.
“정말 건강해 보이는구나. 우리, 한잔해야지. 내일 저녁 어때?”
선배와 술잔을 기울이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어떻게 이 짧은 순간, 이렇게 사소한 말 한마디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게 한 것일까.
“좋아요, 선배.”
내일 꼭 연락하겠다고, 나는 유쾌하게 약속했다. 선배와 내가 짧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승객들은 모두 열차를 타고 내렸다. 출입문을 닫기 전 선배가 크게 소리쳤다.
“내일이다, 내일!”
선배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스크린도어가 닫히고 열차가 출발했다. 어둡고 깊은 터널 속으로 사라지는 불빛을 나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선배는 내가 내려 보지 못한 쉰한 개 역 가운데 몇 군데나 가 봤을까 궁금했다. 가족들과 문화 명소에 다녀 봤겠지. 자상한 사람이니 가족에게도 좋은 가장이겠지. 따듯한 남편, 존경받으면서도 아이들과 허물없이 가까운 아빠일 거야. 월요일에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면 꼭 물어봐야지. 아이들과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물어봐야지. 만일 내가 살 수 있다면, 내일도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다면.
5호선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쯤 들어간 마을에 달봉의 교회가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는 동네에서 달봉이 새로 목회를 시작한 건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간 직후였다. 아버지의 교회를 팔아도 되겠느냐고 달봉이 전화로 물었지만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달봉 씨가 교회 이름을 지어 달래.”
얼마 뒤 아내가 내게 말했다. 아내는 늘 달봉을 달봉이라고 불렀다. 가족 관계로 엄밀하게 따지자면 도련님이나 애들 삼촌이 되어야 했다.
“달봉 씨를 달봉 씨라고 해야지, 그럼 뭐라고 해?”
호칭이 좀 이상하지 않느냐는 내 말에 아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듯 일축했다. 당신도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라고 덧붙이지 않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내가 지었어. 강건한 교회.”
무슨 교회 이름이 그러냐고 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우리 강건, 강한 이름이잖아. 달봉 씨는 단번에 알고 좋다고 했는데.”
아내가 그것도 모르냐고 살짝 눈을 흘겼다. 어디 있느냐 물은 적도, 한번 가 본 적도 없었지만 이름으로 검색하니 주소와 위치까지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교회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장엄했다. 부근에 아파트와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땅값이 오르자 평생 아버지가 헌신한 교회를 홀랑 팔고 서울에 대궐 같은 교회를 지었구나 생각하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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