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중국 국경에서 북한 쪽을 보면 강 너머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선전 구호다. ‘선혈이 낭자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구호가 섬뜩하게까지 느껴진다.
청봉체라는 북한 특유의 글씨체가 갖는 묘한 역동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내용 자체가 너무도 섬뜩한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다. ‘목숨을 바친다’는 표현은 북한 지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구호다.
한 군인이 철길 위를 걸어가는 장면을 순간적으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하루종일 지켜봐도 철길 위로는 기차보다 사람의 왕래가 더 잦았다.
그런데 그 아래 보이는 구호는 다름 아닌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였다. 누군가의 한 생애가 또 다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것이라면 그건 정상적인 것일까. 그것도 수많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의 독재자를 목숨으로 지켜야 한다는 말이니 얼마나 모순적인가.
거대한 기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옆으로 보이는 구호는 또 어떠한가. ‘김정은 장군 만세’ ‘일심단결’이라고 쓰인 붉은색 구호는 북한 정권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아이들의 꿈이 피어나야 할 학교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장군님의 참된 아들딸이 되자’는 구호가 붙어 있다. 독재자를 위해 충성하는 것이 참된 아들딸이라는 사상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이 구호 앞에 선명히 드러나는 듯하다.
모든 건물·길거리·학교에도 빨간색 선전 구호가 내걸려 북한 주민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한다. ‘일심단결’이라는 구호 아래 얼마나 많은 북한 주민의 삶이 송두리째 희생되었던가….
그런데 중국 단둥 너머 신의주의 모습을 촬영하다 ‘압록강관광식당’이라는 간판이 내걸린 상점을 발견했다.신의주 국경 세관이 있는 곳이니 중국인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식당이다. 이 식당 입구에도 예외없이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로 쓴 선전 구호가 내걸려 있다. 개혁개방을 하면 체제 선전 구호 없이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간판을 내걸 수 있을 텐데 왜 그토록 독재의 아집을 꺾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식당 앞에서 그물을 걷는 북한 주민의 모습이 그저 처량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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