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아.”
나는 허리를 굽혀 미끄럼틀 입구마다 들여다보았다. 노란색 미끄럼틀 안에는 없었다. 두 번째, 조금 더 길게 구부러진 초록색 원형 안에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빨간색 미끄럼틀은 가장 길고 원통도 여러 번 꼬여 있었다. 터널 같은 미끄럼틀 앞에 허리를 접어 고개를 들이밀어 보았다. 내 키로 가슴께쯤 되는 높이에 아이의 두 발이 보였다.
“강건!”
나는 미끄럼틀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엉덩이를 조금 더 위쪽으로 밀고 올라가 내게서 숨으려고 버둥거렸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두 발로 양쪽 벽을 야무지게 밀어내듯 버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는 허리를 펴고 후우, 숨을 들이쉬었다. 터진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이 뻐근했다. 무슨 말을 해야 저 작은 가슴 속 겨울을 녹여 줄 수 있을까, 생각나지 않았다.
언젠가 아이가 내 등을 두드렸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아이가 위치한 미끄럼틀 옆으로 가서 섰다. 혹시나 하며 통, 한 번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통, 하고 두드렸다. 잠시 후 아이가 통, 하고 한 번 두드렸다. 아이가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버티고 있는 미끄럼틀 입구로 다시 돌아왔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니 아이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쓴 보람이 있었는지 조금 더 위로 올라가 있었다. 나는 입구에 가까이 얼굴을 대고 아이의 작은 신발을 보며 말했다.
“아빠 말 들려?”
그러자 아이가 기적처럼 또 한 번 통, 두드렸다.
“건아!”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나는 목이 메었다. 솔직히 말해야 했다. 진실을 말하면 이 사무친 그리움이 아이에게 전달될지도 몰랐다.
“많이, 아주 많이 보고 싶었어. 그런데 아팠어.”
내가 말하는 동안, 아이는 숨죽였다.
“엄청나게, 아팠어. 그랬어. 네가 그런 아빠를 보면 싫어할까 봐 겁났어.”
아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다 나았어. 그래서 온 거야. 제일 먼저, 우리 건이, 만나러 달려온 거야.”
나는 더 깊이 허리를 숙이고 아이가 괜찮은지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미끄럼틀 바닥에 대고 통, 통, 두드렸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아이가 두드렸다. 통, 통. 나는 통,통,통. 예전에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두드렸다.
이번에 아이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아이가 내 등을 작은 손으로 두드릴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나는 통, 통, 통, 다시 천천히 두드렸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나는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또르르르.
천년은 지난 것 같았다. 무언가 미끄럼틀을 굴러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꼬마 기차였다. 내가 아이의 생일에 선물한 것이었다. 나는 눈앞에 멈춰 선 장난감 기차를 손에 꼭 쥐었다. 목울대가 칼로 저미듯 아팠다. 미끄럼틀 안을 들여다보았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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