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살아나고 있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지갑을 여는 것은 아니다. 소득 하위 계층은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은 적자 상태가 이어지는 반면, 고소득층은 여전히 상당한 소비 여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소비시장도 자연스럽게 ‘가성비’와 ‘프리미엄’으로 나뉘는 모습이다.
NICE신용평가가 29일 발표한 ‘소비회복으로 실적 개선된 소매유통산업, 업태별 양극화는 심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처분가능소득 격차는 약 870만 원으로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하위 20% 가구는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더 많아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상위 소득층은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비율인 흑자율을 약 4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격차는 지난해에도 뚜렷했다. 작년 1분기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92만1000원이었지만 소비지출은 135만8000원에 달했다. 반면 상위 20%는 처분가능소득 918만 원 가운데 520만4000원을 소비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컸다.
소득 격차는 소비 방식 차이로 이어진다. 저소득층에서는 가격을 중시하는 ‘가성비 소비’가 강해지는 반면, 고소득층에서는 명품과 고급 패션 등 프리미엄 소비가 주류를 이룬다.
가성비 다이소, 프리미엄 백화점
대표적인 가성비 브랜드인 다이소의 매출은 2020년 2조4000억 원에서 2025년 4조5000억 원으로 약 두 배 늘었다. 반대로 백화점의 해외유명브랜드 매출 증가율도 최근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소비 지표만 보면 내수는 회복 국면에 들어선 모습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소매판매액은 338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증가했다. 주식시장 호조에 따른 자산효과와 고소득층의 소득 증가, 외국인 소비 확대 등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심리도 개선됐다. 올해 6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6.6으로 전월보다 0.5p 올랐다. 100을 웃돌면 장기평균보다 소비심리가 낙관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소비 회복의 과실은 업태마다 달랐다. 백화점은 올해 상반기 판매액이 전년 동기보다 14.8% 증가했고 영업이익률도 17.8%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성장세가 뚜렷하다.
백화점 실적 개선에는 고소득층의 소비 여력과 외국인 관광객 증가가 함께 작용했다. 신세계백화점의 외국인 매출 비중은 재작년 2분기 4%에서 올해 2분기 8%로 두 배 높아졌다. NICE신용평가는 고소득층의 자산·소득 효과와 프리미엄 소비가 명품과 패션 판매를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반면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한 할인점은 소비 회복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 할인점 판매액은 전년 동기보다 7.3% 감소했다. 이커머스 경쟁과 내수 부진이 겹친 영향이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국내 할인점은 작년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소비 양극화를 키우는 또 다른 변수는 온라인 쇼핑이다.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11.7% 성장했고, 올해 상반기 이커머스 침투율은 약 35%까지 높아졌다.
NICE신용평가는 국내 소매유통 시장의 ‘K자형’ 양극화 원인으로 이커머스 확대와 외국인 관광객 증가, 소득 양극화를 꼽았다. 특히 소득 격차가 커질수록 소비자는 ‘가격을 더 따지는 계층’과 ‘프리미엄을 찾는 계층’으로 나뉘고, 이 차이가 업태별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분석이다.
올해 민간소비가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가더라도 체감 회복 속도는 계층마다 다를 수 있다. 소득과 자산 격차가 큰 만큼 소비시장 양극화도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한쪽에서는 생활비 부담으로 가성비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다른 한쪽에서는 명품과 고급 패션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 소비 회복 속에서도 ‘중간’은 줄고 저가와 고가가 함께 커지는 흐름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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