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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화성음식문화연구회 너른 연구실에는 당장이라도 멋진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리대와 씽크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올 2월 퇴직 후 어느 해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재규 전 문경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흰 조리복을 걸친, 밝고 활기찬 그의 모습은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명예퇴직 후 특임교수로 물러나면서 수원화성음식문화연구회 일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그는 갈비 명인 1호로 현재 수원화성의 토속 음식을 연구 중이다.
왕실의 잔치음식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수원화성은 조선의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어 준 곳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보면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진찬연 행사를 8일간 열면서 음식 종류와 참석자를 날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레시피가 빠져 있어 이 교수가 그것을 유추하여 연구하는 중이다.
“국가의 무형 유산이므로 대대손손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 그밖에 시니어 요리 아카데미를 개설해 교육을 시작했고 수원 전 지역에 ‘이교수 양푼이탕·찜 전문점’ ‘수원빵’ ‘수원주막국밥’ 등 식당도 여러 곳 운영 중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들이 된장·고추장 담그는 것을 가까이서 보면서 음식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현대 조리·외식 분야는 비즈니스의 주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만 해도 남자가 조리를 한다고 하면 굉장히 선진적으로 받아들였다.
“많은 사람들이 조리와 요리를 헷갈려 한다. 학생들에게도 그 개념을 먼저 정립시켜 준다. 조리란 물리적 화학적 기술적 방법을 통해 음식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물리적으로 씻고 다듬고 까고 썬 후에는 조미료 소금 된장 등을 이용해 맛을 가하게 된다. 음식이 소화 흡수가 잘 되도록 지지고 볶고 찌고 삶는 등 테크닉 요소까지 조리에 포함된다.”
반면 요리란 ‘조리된 음식’은 물론 음식의 기획 단계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서점에서 파는 책이 ‘조리책’이 아니라 ‘요리책’인 것도 ‘조리대회’가 아니라 ‘요리대회’인 것도 그런 이유다. 조리를 포섭하는 큰 개념이 요리인 것이다. 반면 ‘요리사 시험’이 아니라 ‘조리사 시험’인 것은 조리가 학문적인 용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 평생의 과제 ‘수원 갈비’
그의 시그니처 메뉴는 두말할 것 없이 갈비다. ‘수원갈비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12년에는 수원시의회에서 간행한 ‘수원 대표 음식 5미’의 책임 연구자로 참여했다.
수원을 대표하는 오미 즉 5가지 음식은 수원갈비·주막국밥·광교산나물보리밥·지동순대·수원통닭이다. 특히 수원갈비는 갈비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수원의 로컬 메뉴로 자리 잡았다.
수원갈비는 1940년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이귀성 씨가 ‘화춘옥’이라는 간판을 걸고 음식점을 시작한 것이 시초다. 이귀성 씨의 손자인 이광문의 모친 최동연과 고모인 이영숙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1930년 수원시 팔달구 27-1번지에서 형과 동생 삼형제가 ‘화춘제과’라는 과자점을 운영하다 1945년 11월경 독립하여 갈비집을 개업했다.
당시 수원 영동시장은 전국의 쌀이 몰려들면서 싸전거리를 이루었는데 이곳에 식당을 차렸다고 하여 쌀 미(米) 자를 쓰는 미전옥이라 이름지었다.
2년 후에는 80평짜리 목조건물을 신축하고 화춘옥(華春屋)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화춘옥이라는 상호는 일제강점기 화춘과자점에서 유래했다. 그 뜻은 화성(華城)의 화와 창업자 이귀성 씨의 형인 이춘명((李春明)씨의 춘자로부터 비롯됐다는 게 가족들의 증언이다.
화춘옥에서는 처음 해장국을 팔기 시작하면서 국에 갈비를 넣어주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1946년부터 양념숯불갈비를 독립 메뉴로 팔기 시작했다.
“‘농사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수원에서 나왔다. 정조대왕 때부터 수원에서는 인공 수로를 만들어 농사에 활용했고 저수지도 만들었다. 수원은 국내 3대 우시장이기도 했다. 농업진흥청이 괜히 수원에 있는 게 아니다. 수원은 농산물 산지이자 거래 시장으로 식재료가 풍성하다. 또한 수원은 조선 시대 역참이 있던 곳이다. 역참은 관리들이 말을 갈아타는 곳으로 30리마다 하나씩 있었다. 역참 주변에는 주막이 발달해 관리는 물론 과거시험 보러 가는 선비들이 들러 잠도 자고 주린 배도 채우곤 했다. 주막국밥은 바로 이들 주막의 대표메뉴였다.”
한식은 한식다워야 한다
그는 한국요리는 한국요리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1990년대 초 한식을 퓨전화하는 게 유행이었는 그때 생긴 퓨전식당들 중 아직까지 운영하는 곳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동안 해외로 나가 서양요리도 배우고 와인도 배워 왔다면 세계적으로 K문화가 붐을 이루는 이때가 한식을 수출할 절호의 기회다. 수출하되 순수한 한식 그대로 나가야 한다. 한식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외국인이 한식에 한번 맛들이면 금방 중독된다. 잡채건 치킨이건 한국식으로 나가야 승산이 있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한식 수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라고 있다. 이명박정권 때인 2010년 김윤옥 여사가 한식재단(한식진흥원)을 만들었는데 아직까지 잘 운영되고 있다며 이런 사례가 또 나와야 한다고 전했다.
연구자로 사업가로 교수로 바쁘게 사는 그이지만 향후 수원 지역 성당의 노인학교를 찾아다니며 요리도 가르치고 김치 같은 것을 만들어 봉사를 다닐 생각을 품고 있다. 환갑 나이에도 지역사회를 위해, 전통음식 연구를 위해 늘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재규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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