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선 美 아랍계 유권자… ‘트럼프 지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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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I보고서 “바이든정부 향한 분노·절망… 공화당 반사이익”
350만 명 미시간 등 핵심 경합주 거주… 대선에 영향 줄 듯
민주당 중동출신자들 이탈 지속… 가자전쟁 문제가 핵심 이유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0-03 16:51:10

▲ 작년 10월26일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가자지구 지지 시위. 아랍계 미국인들은 민주당 지지자가 많았으나 전쟁을 둘러싼 바이든정부의 태도에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하게 됐다. 최근 AAI(아랍계미국인연구소)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표심이 도널드 트럼프 쪽으로 기울고 있다. EPA

▲ AAI(아랍계미국인연구소) 보고서가 가자전쟁이 아랍계 유권자 표심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아랍계 미국인들이 갈수록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더 지지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확전 위기가 고조되면서 이런 경향이 강화되는 분위기다. 이들의 민주당 지지 철회는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이 전쟁으로 비화한 이래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면서 심해졌다. 현 사태의 배후에 이스라엘을 굳건히 뒷받침해 온 미국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랍계미국인연구소(AAI)에서 500명의 아랍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지난달 9~20일 실시해 2일(현지시간)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우위가 확연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 조사 다자 가상대결에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하겠다는 사람들이 각각 42%·41%였다.

적극적 투표 의사를 밝힌 응답자 대상 조사에선 격차가 더 벌어졌다(트럼프 46%, 해리스 42%). 2020년 대선 때 AAI 조사에선 아랍계 표심이 조 바이든 후보 59%, 트럼프 후보 35% 수준이었으나 가자전쟁 발발 이후 (아랍계 미국인의) 바이든 지지는 17%로 추락했다.

이번 AAI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81%가 가자전쟁이 투표 결정에 중요하다고 답했다. 또 해리스든 트럼프든 대(對)이스라엘 무기 수출과 외교적 지원을 끊거나 휴전을 압박할 후보일수록 득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확인됐다. AAI는 보고서에서 “지난 30년간 아랍계 미국인 여론조사에서 현재 진행 중인 가자전쟁만큼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준 사안이 없었다”면서 “바이든정부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방지에 실패했으며 이에 대한 분노와 절망의 수혜자가 트럼프”라고 지적했다.

하마스 궤멸을 위한 이스라엘의 지상전 감행은 다수의 팔레스타인 주민들 희생을 낳았다. 그럼에도 바이든정부의 이스라엘 전폭 지원 소식은 계속됐으며 민주당 지지층이던 아랍계 민심이 크게 흔들렸다. 특히 우크라이나전쟁 관련해선 러시아를 강력 규탄해 온 미국의 ‘이중 잣대’가 이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심지어 미국은 작년 10월18일 유엔의 가자지구 구호물품 전달에 필요한 ‘인도주의적 휴전’ 촉구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했다. 결의안에 ‘이스라엘의 자위권’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당초 국제사회가 추진하던 휴전안에 대해 ‘하마스에 재정비할 시간을 줄 수 있다’며 반대한 것도 미국이었다.

아랍계 미국인은 약 350만 명으로 추산된다. 미 전체 인구의 1% 남짓에 불과하지만 미시간·펜실베이니아·애리조나·오하이오 등 경합주에 밀집해 산다. 작년 11월 미시간 지역구의 알라바스 파하트 하원의원(민주당)이 NBC방송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 혼자 미시간주 내 거의 모든 아랍계 유권자 표를 갉아먹었다”며 개탄한 바 있다.

미시간주 아랍계는 약 25만 명이다. 2020년 대선 때 미시간에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후보에게 약 15만 표(2.8%p) 차, 또 다른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에선 1.2%p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이번 11월5일 투표에서 아랍계 유권자들의 표심이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랍계 유권자 단체인 엠게이지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미시간주 아랍계 유권자 14만5000명이 투표해 약 70%가 민주당 후보(바이든)를 찍었으나 이번엔 큰 변화를 보일 전망이다.

작년 11월 팔레스타인 출신 네이다 알하누티 엠게이지 사무총장은 NBC방송에 출연해 “실망한 아랍계 유권자들이 2024년 선거에선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거나 제3당을 찍겠다고 한다”며 현지 민심을 전했다. 가자 출신 작가 라일라 엘하다드 역시 “2024 대선에서 미시간은 공화당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시간주 디어본 시의 첫 아랍계 시장인 압둘라 하무드 또한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가자지구에 갇힌 우리 가족들도 휴전을 촉구한 우리 목소리도 다 무시됐다”며 목소리 높였다.

디어본 주민 1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아랍계다. 여기서 팔레스타인 미국인 청년 네트워크를 운영해 온 ‘신세대 팔레스타인인’ 대표 아메르 자흐르는 NBC방송에 나와 “지역의 아랍계 미국인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런 경향은 줄곧 심화됐으며 자연히 투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