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추락하고 있는 ‘삼성’과 한국 경제 닮은 꼴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소니·일본과 폭스콘·대만처럼 ‘삼성·한국’도 종말?
세대교체·혁신·경영 전략 실패 등 韓경제와 흡사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16 06:31:30

일본의 잃어버린 기간이 30년 이상 길어졌다. 그 시작은 1985년 플라자 합의였다. 당시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 상품으로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보던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엔화 가치를 두 배 이상으로 평가절상하려는 파상적 압력에 일본이 승복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일본 정부는 본격적인 엔고(円高) 시대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모한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늘어난 유동성은 투기 자금이 되어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몰려 거품 경제를 만들어 냈다. 1990년대 초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초장기 불황의 서막을 알렸다. 또한 수출과 내수가 타격을 입으면서 산업계의 설비 과잉이 피눈물 나는 제조업 구조조정으로 연결되었다. 이후에도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 불협화음이 회복은커녕 고통의 시간을 연장했다.

그러나 이토록 일본에 인고의 시간이 길어진 것은 주력 제조업의 후퇴에 기인한다. 소니를 비롯한 일본 간판 기업들이 줄줄이 추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날로그 시대 강한 일본 제조업의 상징이던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의 신화가 무너진 것이다. 2등 전략으로 턱밑까지 쫓아오는 한국 기업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근본적인 혁신은 외면한 채 일시적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이에 일본 기업들은 살얼음판 같은 불안한 1위 자리 유지에 급급하다가 결국 바닥으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한때 일본에서는 한국 대기업의 오너 경영에 일본 대기업의 전문 경영 방식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았다. 흔히 한국의 ‘삼성’과 일본의 ‘소니’가 양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자존심으로 비유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시중에서 ‘삼성’의 추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누가 뭐래도 삼성은 혁신의 아이콘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엄청난 노력의 결과로 정상으로 올라가지만 내려갈 때는 속절없이 단기간에 사그라진다. 삼성의 승승장구는 한국 국민의 자부심과도 연결된다. 특히 국내보다 해외에 나갔을 때 세계 시장에서 삼성이 누리고 있는 위상을 보고 국민적 자긍심이 고양되곤 했다. 일본 국민이 한동안 보여 주었던 ‘소니’에 대한 애정 혹은 애착과 매우 흡사하다. 영원한 강자로 군림할 것만 같던 소니가 일순간에 도태된 것과 같이 삼성에게도 운명의 시간이 온 것인가. 중국 기업의 줄기찬 공세로 끊임없이 위협받는 삼성이 버티지 못하고 추락할 수 있다는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것이 정확한 현실이다.

삼성의 위기는 한국 경제의 위기와 연결된다. 삼성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것들과 대부분 맥을 같이한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세대교체 실패다. 3대 오너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선대 경영이 이룩해 놓은 치적을 갉아먹고 있다. 이에 더해 조직 내 주축 세력의 오만과 나태가 갈수록 두드러진다. 수십억의 연봉을 받고도 결과는 이에 훨씬 못 미친다. 노조가 생기고 반발이 거세지는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다. 위기가 엄습하는데도 이를 의식하지 않고 순간을 모면하려는 관료주의적 색채가 팽배해졌다. 이는 압축 고도성장 시대 매너리즘에 빠져 새로운 동력을 찾아내지 못하고 표류하는 한국 경제의 실상과 닮았다.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와 관행이 진행형이다.

또 하나는 혁신의 실패다. 성공에 도취해 초격차를 외치지만 구호에만 그치고 실제로는 경쟁자의 격차 축소를 허용했다. 미세한 격차를 두고 침소봉대하면서 오히려 방심했다. 어리석은 자만으로 일류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한국 경제도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회복을 보면서도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를 간과하는 오판을 계속하면서 방향타를 잡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경영 전략의 실패다. 시장의 향방과 기술의 진화에 대한 대응 미숙이다. 내로라 하는 세계적 기업들이 일시에 추락하고 회복하지 못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시장의 단기 이익에만 집착한 나머지 미래 기술 축적 역량에 대해 소홀한 결과다.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낸 한국 경제에 기적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의 추락과 대조적으로 현대자동차의 부상이 경이롭다. 같은 3세대 오너 경영이지만 경영 성과는 확연히 다르다. 현대차 리더십의 속도와 파괴적 혁신이 크게 눈에 띈다. 열린 경영으로 글로벌 기업과의 합종연횡이 줄을 잇는다. 삼성은 정교하고 현대는 우직하다는 평가는 이제 과거형이고, 상황은 역전됐다.

소니를 대신하여 ‘도요타’의 일본이 되고 있듯이 삼성이 아닌 ‘현대’의 한국이 될 것 같은 예감도 든다. 대만에서도 ‘폭스콘’이 밀려나고 ‘TSMC’가 대장주로 떴다. 현실에서는 영원한 1등은 없고 기적 또한 계속 우려먹을 수도 없다. 소 잃고 부랴부랴 외양간 고치는 삼성이 이번 도전에서도 실패하면 2등 이하로 추락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의 현실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