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국왕·총리 욕설·오물 세례… 수해 늑장 대응에 분노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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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명 사망·수십 명 실종… 3000 가구 단전
지중해 항구도시 파이포르타 피해 심각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04 17:34:57

▲ 지난달 기록적인 홍수로 스페인 바렌시아주(州)가 큰 피해를 입었다. 3일(현지시간) 파이포르타 수재 현장을 찾은 펠리페6세(우산 밑) 일행이 당국의 늑장 대응에 분노한 시민들에게 욕설과 진흑·오물 세례를 받았다. 펠리페6세가 우산으로 경호를 받으며 현장을 떠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펠리페6세 스페인 국왕 일행이 대홍수로 큰 피해를 본 현장을 찾았다가 분노한 수재민들에게 욕설·진흙·오물 세례를 당했다. 로이터·AFP·EFE 통신 등에 따르면 펠리페6세는 이번 수해로 최소 62명 사망자가 나온 발렌시아주 파이포르타를 레티시아 왕비, 페드로 산체스 총리,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 주지사와 함께 방문했다. 대항해시대의 영화를 이끈 지중해 항구도시다.

성난 주민들이 국왕과 총리 일행을 에워싸고 진흙과 오물을 집어 던졌으며 “살인자들” “부끄러운 줄 알라” “꺼지라” 고함쳤다. 온라인 영상에선 한 청년이 국왕을 향해 국가의 이번 수해 대응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소리쳤으며 마손 주지사의 사임을 요구하거나 “산체스 총리 어디 있나”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호원들이 급히 우산을 씌워 보호했으나 국왕 부부는 얼굴과 옷에 진흙을 얻어 맞았다. 그래도 주민들을 위로하려 시도하는 모습이었지만 서둘러 방문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으며 다른 수해 지역 방문 일정도 취소됐다고 AFP 등이 전했다. 이미지 관리를 잘 해 왔다는 스페인 왕실로선 매우 충격적인 상황이다.

펠리페6세가 이후 소셜미디어 영상을 통해 “피해 주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이해해야 한다. 피해자들에게 국가의 온전함, 희망과 보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방송 RTVE에 따르면 이날 군중이 던진 물체에 돌과 딱딱한 물체가 섞여 있어 경호원 두 명이 다쳐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산체스 총리의 차량 창문도 깨졌다.

산체스 총리는 주민들의 고뇌와 고통에 공감한다면서 “그러나 모든 종류의 폭력을 규탄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주민들이 이처럼 분노한 것은 당국의 안이한 대응이 피해를 키웠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기습 폭우에 사망자 최소 217명으로 3일 집계됐다. 사상자 외에 수십 명이 행방불명 상태이며 약 3000 가구에 전기가 끊겼다.

스페인 기상청의 폭우 ‘적색경보’ 발령부터 지역 주민에게 긴급 재난 안전문자 발송까지 열 시간 넘게 걸리는 등 당국의 대응 탓에 인명피해가 커졌고 이후 수색과 복구 작업도 느리다는 비판이 높다. 산체스 총리는 2일 기자회견에서 피해지역에 군·경 1만 명의 추가 파견을 약속했다. 군인 7500명·경찰 9000여 명이 생존자 수색과 시신 수습 등에 나서게 된다.

피해 지역은 중앙 정부에 실종자 수색과 구호·복구 작업 지원이 절실하다. 마리벨 알발라트 파이포르타 시장은 유로파 프레스에 도시 내 여러 지역에 여전히 접근조차 할 수 없다며 “차 안에 시신이 있어 수습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산체스 총리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며 “과실을 살피고 책임 소재를 파악하겠다”면서도 “지금은 단합할 때”라고 호소했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