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진 중강진에 가을이 지나간다. 낟알이 거둬지고 옥수수 단이 베이면 뼛속을 에이는 한겨울 추위가 매섭게 불어 닥칠 것이다. 온 땅을 마비시킬 만큼 차가운 압록강 칼바람이 벌판을 덮치기 전에 한 톨의 식량이라도 더 준비해야 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온다.
그냥 스쳐보면 황금빛 들녘에 풍요로운 만추의 벌판이지만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만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와 끝까지 뜻을 같이하자’는 핏빛 서린 선전 구호가 이내 이곳이 북한임을 확인시켜 준다.
황금빛 가을 들녘의 풍성함이 온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며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바로 그 북한 말이다. 너른 들판에서 아이들의 고사리손 위로 옥수수 포대가 쌓이지만 마른 땅의 황폐함만이 온 들녘에 넘실댄다. 농기계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곳에서 그나마 보이는 트랙터에는 ‘자력’ ‘자강’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며칠 전 북한 노동신문에는 “전체 농업 근로자들은 싸우는 고지에 식량을 보장하는 심정으로 올해 농사 결속을 제때에 질적으로 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 당이 제시한 알곡 고지를 무조건 점령하여야 한다”는 글을 실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그곳에서 식량은 ‘싸우는 고지’에 바쳐야 할 국가 재산으로 여겨질 뿐이다.
만추의 계절 황금빛 들판의 풍요로움도 그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할 뿐 넉넉함의 상징은 될 수 없다. 그토록 위대하다고 외치는 김일성·김정일주의라면서 왜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할까. 주체농법으로 혁명적인 농사를 짓는다면서 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는가.
언제가 되어야 김일성이 주장한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맘껏 먹을 수 있을까. 그나마 수확의 계절인 가을도 이러할진대 한겨울에는 어떻게 살아 낼 수 있을는지. 새봄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내년에는 더욱 배불리 먹을 수 있을지 기대라도 할까. 중강진의 만추가 그 어느 곳에서보다 앙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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