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88] 계란으로 바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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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18 06:20:30

이런 와중에 승연이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돌멩이를 든다는 사실에 오정일은 분노했다. “너 학교 때려치워. 그깐 똥통 학교 다니면서 시위나 할 거면 때려치우고 미국 가!”

승연의 집은 아버지 중심으로 질서가 탄탄했다.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으로서, 수백 명 직원을 책임지는 회사 대표로서 아버지는 의무와 책임에 충실했다. 근면하고 성실했고 과장이나 사치·허례허식이 없는 분이었다. 할아버지 가업을 물려받긴 했어도 회사를 크게 키운 건 아버지의 노력과 성과였다.

양육에 있어서 기준이 엄격했으나 강압이나 강제는 없었다. 아버지는 자율 속 책임을 중시했다. 매일 오전 4시에 기상해서 조간을, 저녁엔 두 종류의 석간을 읽었다.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좋은 책은 자녀들과 공유했으며 토론하길 즐겼다. 아버지의 충실한 독서 토론자는 오빠 승호였다. 아버지는 오빠가 이과생이라 문학적 감성을 키워야 한다며 독서를 강권했다.

오빠는 건들건들, 건성인 것 같아도 침착하고 치밀한 면이 있었다. 특히 아버지와 토론할 때 행간을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 아버지조차 감탄하는 눈빛이었다. 아버지는 애당초 오빠 승호에게 기업을 맡길 생각이 없었다. 사업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자식까지 고달픈 직업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박사까지 해서 교수가 되라고 당부하셨던 아버지는 승호가 주도면밀하고 대범하면서도 책임감이 있다는 걸 관찰한 이후였다.

“똥통 학교 다니니까 데모라도 해야죠. 똥통 학교 다니면 나라 걱정 안 해도 돼요?”

아버지는 분을 참는 빛이 역력했다. 승연은 아버지를 향해 큰소리로 대꾸했다.

“네가 나라 걱정한다고 바뀌지 않아! 때가 있는 거야, 때가. 결국 선진 국가로 가게 돼 있고, 네가 하는 건 달걀로 바위 치기야.”

“아버지! 달걀로 바위라도 쳐야 흔적이 남을 거 아녜요!”

승연이 태주한테 했던 말이었고 태주의 대답이었다. 아버지는 급기야 평생 하지 않은 말까지 했다. 데모하다 잡혀서 경찰서라도 가게 되면 안 빼 준다, 호적에서 파내겠다, 했다. 아버지가 얼마나 화났는지, 끊었던 담배를 피웠다. 아버지가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승호는 승연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야, 너 이용당하는 거 모르지? 너같이 찌질한 애들, 운동권에서 특히 지방대생들을 뭐라 부르는지 알아? ‘인자’라고 해. 조폭에서 맨 밑 따까리, 행동대장. 그냥 지가 왜 죽는지 모르고 충성 맹세하고 죽는 애들 있잖아. 서울대 대가리들은 큰 건더기 하나 해서 별 다는 게 목표야, 그게 운동 지분이거든. 나중에 봐라, 걔들한테 빚진 거 다 갚아 주지. 근데 이 따까리 병신들은 시키는 대로 해요, 공부 대가리가 안 되니 시키는 일만 하지. 너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 혁명론 공부는 하고 돌 던지는 거냐? 모르면 부화뇌동하지 말고 알 때까지 잠자코 있어. 데모가 유행인 줄 아는 애들이 남 따라서 하는데, 촌스러워도 자기 색깔 지키는 게 더 폼나고 멋있어.”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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