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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47’로 미국이 시끄럽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SNS에 올랐던 이 숫자가 ‘미국 47대 대통령 암살’을 선동한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코미는 15일(현지시간) 모래사장 위에 조개껍데기를 86(eight-six) 47(forty seven) 형태로 배열한 사진을 “해변 산책로에서 본 멋진 조개 배치”라며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코미는 FBI 국장(2013~2017) 시절 트럼프 1차 탄핵소추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 인물이다.
트럼프1기 첫 해 코미는 법정 임기 10년을 못 채우고 면직된 이래 각종 반(反)트럼프 행보를 통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공적’으로 통했다. 논쟁적인 이번 SNS 게시물로 인해 자신을 향한 공격의 빌미를 자초한 격이 됐다. 트럼프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백악관 부비서실장인 제임스 블레어, 테일러 부도위치 등은 코미의 게시물이 트럼프 암살을 선동한 것으로 봤다. 미국 은어로 86은 ‘내쫓다’ ‘제거하다’를 뜻한다. 따라서 8647이란 ‘제47대 대통령(트럼프)을 암살하라’의 상징 메시지라는 것이다.
BBC에 따르면 20세기 초 미 대도시 음료 카운터에서 종업원들끼리 특정 상품 매진을 서로에게 알릴 때 86이라는 은어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거절·거부하다의 비격식적 형태인 퇴짜놓다(nix)를 리듬감 있게 표현한 속어인 셈이다. 분주한 시간 식당에서 재료가 소진된 메뉴를 ‘(메뉴표로부터) 86시키라’고 종업원들이 서로 귀뜸하거나 소리치는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다. 1950년대엔 ‘진상 손님’에게도 쓰인다. 다루기 힘들거나 만취 고객은 86 당해 쫓겨나거나 더이상 서비스 제공을 받지 못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장을 지낸 제시 셰이드로어 컬럼비아대 교수는 17일 AP통신에 “‘물건이 소진(매진)되다’가 86의 원래 의미인데 여러 은유적 확장이 있다”고 짚었다. ‘누군가를 내쫓다·없애다’, 일부 문학작품에서 ‘살인’을 완곡하게 표현한 용례들이 있으나 ‘쓸모없어진 것을 처분하다’가 일반적 파생 의미라는 설명이다.
코미는 문제의 게시물을 삭제한 후 “아까 해변 산책로에서 본 조개들의 사진을 정치적 메시지로 여기며 올렸다. 난 이 숫자들을 폭력과 연관짓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고 일체의 폭력에 반대하기 때문에 게시물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쫓아내거나 ‘트럼프 반대 지지’ 의사를 담아 사진을 게시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코미는 이날 오후 워싱턴DC 비밀경호국(SS)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될 발언에 대한 수사의 표준 절차이며, 기소가 고려 중임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트럼프는 16일 방영된 미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코미가 알면서 해당 사진을 올렸다며 “어린이도 그 사진 의미를 안다. 그(코미)의 행동엔 이유가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당국의 수사를 지켜볼 태세다. “끔찍한 일” “더러운 경찰” 등을 언급했으나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싶지 않다. 팸(본디 법무장관) 등 모든 훌륭한 사람들에게 달린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밀경호국이 소속된 국토안보부의 크리스티 놈 장관은 15일 엑스(X)에 코미 심문 사실을 확인했다. “불명예 퇴진한 코미 전 FBI 국장이 조금 전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의 암살을 선동했다. DHS와 비밀경호국(USSS)이 수사 중이며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계속 대통령 신변 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도 다짐했다. 캐시 파텔 현 FBI 국장 역시 1차 수사권을 가진 비밀경호국에게 “모든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미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민간 이메일 계정 공무상 사용에 따른 기밀정보의 부적절한 취급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더구나 트럼프 첫 취임 후 FBI가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과 2016년 트럼프 선거운동본부 관계자들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수사해 트럼프와 충돌했다. 이 일로 트럼프 측근인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사임에 내몰리는 등 트럼프로선 임기 초반의 심각한 타격이었다.
코미의 2017년 6월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 증언은 당시 ‘폭탄 발언’ ‘핵폭탄’ ‘치명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랍다’ 등의 제목을 달고 기사화됐으며 국내에도 대서특필됐다. 이후 코미는 자신의 트럼프1기 때 체험을 반(反)트럼프적 시각으로 언론기고나 저서 등을 통해 적극 소개했다. 또한 FBI 근무 경력 중심의 회고록을 썼고 범죄소설 작가로 변신해 20일 발간 예정인 신작 ‘FDR 드라이브’를 홍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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