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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출연연구기관 원장 임기 만료 3개월 전 선임 절차를 의무화한 법이 기관평가 시기와 충돌하면서 첫 적용부터 사실상 무산됐다.
1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상반기 임기가 끝나는 8개 출연연은 모두 법에서 정한 시점에 맞춰 차기 원장 선임 절차를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7월 대통령령 개정 과정에서 기관평가 시기와 충돌하면서 현실적 집행이 불가능해진 데 따른 것이다.
대통령령은 기관평가 상위 평가 결과가 원장 임기 만료 5개월 전까지 확정되지 않은 경우를 예외 사유로 명시했다. 그러나 현행 평가 일정상 결과는 임기 만료 직전에야 확정된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13일 임기가 끝나는 국가녹색기술연구소를 비롯해 12월 임기 종료 예정인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모두 3개월 전 절차 착수가 이뤄지지 못했다. 내년 1월 이후 임기 종료 예정인 다른 기관들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과학기술계는 제도 설계 단계에서 평가 시기와 임기 연동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법을 우선 통과시킨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법 취지였던 늑장 선임 방지는 실현되지 못했고 오히려 제도적 공백만 남겼다는 것이다.
특히 다른 정부출연연과 달리 과기출연연만 기관평가 결과에 따라 원장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관평가가 기관장 개인 성과에 치중해 운영 안정성보다는 실적 홍보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평가가 사실상 기관장 치적 보고 성격을 띠면서 본래 취지와 괴리가 발생했다”며 “연임 제도를 원래 방식으로 복귀하면 운영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와 NST는 문제 인식을 공유하며 제도 개편에 착수했다. 검토 중인 안은 기관평가 결과를 연임 판단 기준에서 제외하고 현직 원장이 연임을 희망하면 차기 공모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법 규정과 충돌을 피하면서 선임 절차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대안으로 꼽힌다.
이번 사례는 출연연 원장 인사 지연 문제를 해소하겠다던 입법 취지가 첫 시행부터 좌초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됐다. 전문가들은 제도 정비를 통해 기관평가와 임기, 연임 여부를 분리하고 보다 유연한 구조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혼선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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