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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를 맞아 ‘신탁’이 자산관리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현행 제도는 여전히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를 주제로 한 산학 세미나가 26일 오후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보험연구원이 주최하고, 금융·보험·신탁업계 전문가들이 패널로 참여해 ‘보험산업과 신탁’을 주제로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눴다. 특히 종합재산신탁을 중심으로 치매·질병 등 노후 리스크에 대비한 제도적 활용 가능성과 함께 자본시장법에 따른 규제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신탁은 고령자가 자신의 자산을 미리 지정한 방식과 목적에 따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사망 이후에도 유언처럼 효력을 갖는다. 특히 치매 등 인지기능 저하가 발생했을 때도 신탁을 통해 돌봄 자금이나 생활비, 의료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실질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행 법·제도는 실생활에서의 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계완 교보생명 팀장은 신탁이 고령화 사회에서 핵심적인 자산관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탁은 본인이 사전에 재산 사용 목적과 방식을 지정할 수 있어, 치매나 사망 이후에도 자산이 본인의 뜻대로 활용되도록 할 수 있는 제도”라며, 상속 분쟁 방지, 자녀 통제, 돌봄 자금 마련 등 다양한 상황에서 실효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험과 연계된 종합재산신탁을 활용하면, 사망 보험금도 장기 플랜에 따라 자녀 교육비나 생활비로 분할 지급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현행 자본시장법은 모든 신탁을 금융투자상품으로 간주하고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단순 자산 관리 목적의 ‘관리형 신탁’도 과도한 제약을 받고 있으며, 국민연금, 퇴직연금, 보험금 등 실생활 자산이 신탁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돼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로 꼽혔다. 김 팀장은 “현 제도는 투자성과와 무관한 신탁까지 금융상품으로 보고 규제하고 있다”며, 신탁 대상 확대와 목적 중심의 유연한 제도 설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문재규 하나은행 팀장 역시 “노후 대비, 상속 설계 등 일상적 신탁 수요까지 금융투자 규제의 틀로 묶고 있는 것은 제도적 과잉”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일본은 신탁 목적에 따라 규제를 차별화하고 있으며, 가족신탁과 같은 금전신탁은 고객 중심의 실용적 제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신탁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수탁 금융기관이 예금 운영을 통해 수익을 내고 고객에게는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를 도입해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보험업계도 신탁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박민선 손해보험협회 팀장은 “보험금의 지급, 활용, 사후 관리까지 고려할 때 신탁은 고령화 시대에 매우 유효한 수단”이라며, 치매와 같은 인지 저하 상황에 대비한 보험금 신탁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일부 생명보험에서만 보험금 신탁이 가능하고, 손해보험 상품이나 치매·상해 보험 등으로는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제도적 인프라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발언자들은 입을 모아 신탁 가입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문턱이 높다고 지적하며, 보험 상품처럼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신탁 관련 홍보와 소비자 교육 확대, 자격을 갖춘 전문인력 양성, 신탁업 진입 요건 완화 등 제도적 뒷받침이 요구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종합재산신탁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4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신탁 가능 자산의 범위 확대 △재신탁 허용 △세제 유인 마련 △가입 절차 간소화 및 인프라 확대를 꼽았다. 특히 공적연금, 보험금, 청구권 등 현재 신탁 대상에서 빠져 있는 자산들을 포괄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신탁은 단순한 절세 수단이 아니라, 고령자의 생애 후반부를 보호하는 사회적 장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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