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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원을 들고 나와도 예전처럼 담을 수가 없다.”
장바구니 앞에서 나온 이 말은 오늘의 경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식탁 물가가 오르고 외식비가 뛰는 사이, 고환율까지 맞물리며 서민 가계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물가와 환율이 동시에 흔들리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체감고통은 훨씬 더 빠르고 깊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식품 물가가 27% 상승했다. 사과는 60% 이상, 김은 50% 넘게, 생선류는 30% 가까이 올랐다. 선택적 소비가 아니라 필수품의 가격이 이 정도 오르면 그 충격은 저소득층과 고령층, 그리고 1인 가구일수록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장바구니가 가벼워지는 만큼 삶의 질도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도 물가 상승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1460원선을 훌쩍 넘어섰고, 9일 현재 장 초반부터 1470원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고환율 뉴노멀’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국제유가가 하락해도 국내 기름값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환율이 오르면 원자재·에너지·식품 등 모든 수입 물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상승하고, 이는 다시 물가 전반을 자극한다. 기업들은 환율 리스크에 대비해 달러를 쌓아두기 시작했고, 시장의 불안 심리는 더 커지고 있다.
실제 대형마트를 찾은 소비자들의 장바구니는 확연히 줄었다. 귤은 개당 가격이 오르면서 박스 구매가 사라지고 낱개 구매가 일상화됐다. 바나나·키위 등 수입과일은 환율 상승이 고스란히 반영돼 부담이 커졌다. “딸기만 그나마 살 만하다”는 소비자의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목소리다. 고기도 사정은 같다. 미국산·호주산 소고기마저 할인이 없으면 손이 가지 않으며, 한우는 이미 ‘보고 지나가는’ 상품이 됐다.
기업들 역시 방어에 나섰다. 수입선을 늘리고, 사전 계약을 확대하며, 가공 단계를 단축해 가격을 낮추려 애쓰고 있지만, 환율 앞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정부도 할당관세 지원이나 ‘슈링크플레이션’ 단속 등 조치를 내놨지만, 이는 말 그대로 미세 조정에 불과하다. 지금의 물가 상승은 단일 요인이 아닌 복합적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생산량 변동, 국제 원자재 시장의 불안, 인력·물류 비용 상승,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등이 물가의 기초 체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고환율이 지속되면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를 쉽게 선택할 수 없다. 금리를 내리면 외국 자금이 빠져나가 환율이 더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이미 목표치를 넘어 상승 전환했고, 시차를 두고 더 높은 수준의 충격이 찾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수개월째 이어지는 변동성 속에서 물가 안정은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과제다. 유통·공급망 효율화, 취약계층 보호, 기업의 자구 노력, 소비 패턴 변화 등 다양한 요소가 동시에 맞물려야만 장바구니 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다. 물가 상승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단기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를 다듬어가는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환율·물가·공급망 불안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국민의 장바구니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단기 처방이 아닌 정책·산업·소비 구조 전반의 지속 가능한 해법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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