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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마케팅 교과서에서 소비자 분류는 명확했다. 연령과 성별, 소득 수준에 따라 선호하는 브랜드와 제품 카테고리가 뚜렷하게 나뉘었고, 기업들은 이 틀 안에서 타겟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공식은 유효하지 않다. 10대들이 건강을 위해 유기농 샐러드를 찾고, 50대 남성이 다이소에서 귀여운 캐릭터 상품을 구매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우리는 특정 브랜드에 얽매이지 않고 고급 제품이나 저렴한 제품을 자유롭게 소비하는 '옴니보어(omnivore)' 소비자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잡식성'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옴니보어는 특정 라이프스타일이나 카테고리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디지털 세대의 경계 없는 취향을 반영하듯, 이들은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와 편의점의 가성비 도시락을 동시에 소비하며, 클래식 콘서트와 힙합 페스티벌을 즐긴다. 이들의 등장은 새로운 소비 유형의 출현을 넘어 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한다.
가장 큰 배경은 단연 디지털 기술과 정보의 홍수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의 정보와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들은 더이상 주입식 정보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은 획일적인 유행을 따르기보다 개인의 취향과 신념에 기반한 주체적인 소비문화를 꽃피웠다. 또한 고도화된 개인주의 문화와 다양성 존중의 가치관 확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들이 좋다는 것을 따르기보다 나의 만족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전통적인 가족 구성의 해체는 소비의 주체를 더욱 파편화시켰고, 이는 곧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소비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 옴니보어적 특성은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계층을 넘나든다.
MZ세대는 이러한 트렌드의 선두 주자다. 이들은 명품 스니커즈를 위해 거금을 투자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비건 제품을 선택하는 이중적인 소비 행태를 보인다. 이는 플렉스(Flex)를 통한 자기표현과 동시에,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그들의 욕구를 반영한다.
40·50대 X세대 역시 만만치 않다. 이들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힙한 공간과 브랜드를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경험을 공유한다.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젊음을 유지하려는 '오팔(OPAL) 세대'의 특성이 옴니보어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이제 소비는 단순한 부의 과시가 아니라, 나만의 안목과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옴니보어 소비는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현대 사회에서 자아 정체성을 탐색하고 구성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업은 이제 명확한 타겟층을 설정하기보다, 소비자의 다층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연한 브랜딩과 개인화된 경험 제공에 집중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세상을 보는 시야는 더 넓어진다.
중요한 것은 무분별한 소비가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와 철학을 찾는 것이다. 고정 관념의 틀을 깨고 나온 옴니보어 소비자들. 그들은 풍요로운 정보의 바다에서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며, 다양성과 자율성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성숙의 징표다. 이 다양하고 매력적인 소비자들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기반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긍정적 신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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