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손(孫)’씨들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밀양손씨 후손들은 서울과 수원 등 수도권에만 빌딩 3채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빌딩의 총 가치는 75억원이 훌쩍 넘는다.
지난 2015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에 거주하는 ‘손(孫)’씨는 45만7303명에 달한다. 이 중 경남 밀양시를 본관으로 하는 밀양손씨는 30만6895명이다. 전체 손씨의 67.1%로 여러 ‘손(孫)’씨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다.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밀양손씨 문중의 대표 단체격인 밀양손씨전국종친회(이하·전국종친회)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빌딩 한 채를 소유하고 있다. 빌딩은 서울 지하철 1호선 회기역 2번 출구에서 직선거리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1968년 4월 지어진 빌딩은 지상 2층이 구조로 돼 있다. 규모는 대지면적 73㎡(약 22평), 연면적 118.42㎡(약 36평) 등이다. 전국종친회는 해당 빌딩을 지난 2012년 4월 총 4억4000만원에 매입했다.
육재복 원빌딩 팀장은 “이 빌딩은 토지 가격은 3.3㎡당 4000만원 수준이고 건물은 너무 낡은 탓에 가격은 상정하지 않는다”며 “이에 따른 빌딩의 시세는 약 8억8000만원 가량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밀양손씨 계파 중 한 곳인 밀양손씨광리군파서울종중(이하·광리군파)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소재 빌딩 한 채를 보유했다. 광리군파는 해당 빌딩을 지난 1997년 11월 매입했다. 빌딩은 국립4·19민주묘지입구사거리 남동쪽 코너에 위치해 있다. 서울지하철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 1번 출구에서 직선거리로 약 200m 가량 떨어진 곳이다.
빌딩은 지난 1992년 9월에 완공됐다. 602㎡(약 182평)의 토지 위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다. 연면적은 1528.28㎡(약 462평)이다. 육재복 팀장에 따르면 빌딩의 토지 가격은 3.3㎡당 3000만원 수준으로 전체 건물의 가치는 54억6000만원이다.
또 다른 밀양손씨의 계파인 밀양손씨국자진사공파수원종중회(이하·국자진사공파)는 경기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에 위치한 빌딩 한 채를 소유하고 있다. 국자진사공파가 소유한 빌딩은 수도권지하철 분당선 매탄권선역에서 직선거리로 약 400m가량 떨어져 있다.
국자진사공파가 이곳 빌딩 부지를 매입한 시기는 지난 2002년 7월이다. 부지 매입 후 2004년 지금의 빌딩을 신축했다. 규모는 대지면적 396.2㎡(약 120평), 연면적 1635.19㎡(약 495평) 등이다. 지하 1층, 지상 6층 구조로 돼 있다. 빌딩의 현재 시세는 약 14억4000만원에 달한다는 게 인근 부동산의 설명이다.
밀양손씨 시조, 왕도 감탄케 한 신라시대 효자 ‘손순’
‘삼국유사’, ‘동국사략’, ‘동국통감’ 등의 사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손씨의 뿌리는 박혁거세를 신라의 임금으로 옹립한 것으로 알려진 6개 고을 중 하나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 구례마(俱禮馬)다. 서기 32년 신라의 임금인 유리 이사금은 6개 마을의 이름을 고치면서 무산대수촌을 모량부(牟梁部)로 고쳤다. 모량부 촌장의 성씨를 손씨(孫氏)로 사성했다.
밀양손씨의 시조는 신라시대의 인물인 손순으로 알려져 있다. 손순은 독특한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손순은 모량부 출신으로 태자사 벼슬을 지낸 손학산의 아들이다. 손순은 우잠태수 벼슬을 지낸 백영의 딸에게 장가를 갔다.
손순 부부는 살림이 넉넉지 못했던 탓에 함께 품을 팔면서 살았다. 순손과 백씨부인은 생계를 어렵게 이어나가면서도 손학산의 부인이자 손순의 어머니인 운오(運烏)를 극진히 봉양했다.손순과 백씨부인 사이에는 어린 아들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손순 부부가 늙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음식을 어린 아들이 매번 빼앗아 먹었다. 결국 손순은 부인인 백씨부인과 의논해 어린 아들을 땅에 묻어버리는 것이 효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손순 부부는 자신들이 거주하던 지역 인근에 위치한 산인 취향산 북쪽 기슭으로 간 후 어린 아들을 묻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을 막 파기 시작하는데 삽 끝에서 갑자기 옥돌을 치는 소리가 났다. 손순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주위를 파니 옥돌로 만들어진 석종(石鐘)이 나타났다. 시험 삼아서 석종을 두들겨보니 매우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이상한 기운을 느낀 손순은 아들을 묻는 것을 관두고 석종을 들고 산을 내려왔다.
손순은 석종을 대들보에 매달고 두들겼는데 그 소리가 왕궁까지 전해졌다. 당시 신라를 다스리던 흥덕왕이었다. 신하들을 시켜 종소리의 근원을 확인한 흥덕왕은 석종을 악부(樂府)에 소장하고 손순에게는 새 집 한 채와 쌀 50석을 줬다. 높은 벼슬도 내렸다. 손순은 이후 공을 세워 월성군(月城君)이라는 칭호는 받게 됐다. 당시 사람들은 손순이 죽은 후 그의 묘를 일컬어 효자릉(孝子陵)이라 불렀다.
손예진, 손석희, 손연재 등 밀양손씨 후손들 사회 각계각층서 맹활약
손순의 후손들이 밀양을 본관으로 삼기 시작한 시기는 손순의 손자인 손익감 때 부터다. 손순의 맏손자인 손익감(孫翼減)이 나라에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으로 봉해졌다. 응천은 밀양시의 옛 지명이다. 이때부터 손순의 후손들은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후 밀양손씨 가문에서는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
현재도 밀양손씨 후손들 중에는 사회각계 각층에서 맹활약 중인 유명인사들이 다수 존재한다. 밀양손씨 출신의 가장 대표적인 언론·방송계 인사로는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과 손범수 아나운서 등이 꼽힌다. 지난 1956년 7월 태어난 손 사장은 1984년부터 2006년까지 MBC에서 아나운서와 보도국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는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활동하다가 2013년 5월 JTBC 사장이 됐다.
1964년에 태어난 손범수 아나운서는 지난 1990년에 KBS 17기 공채 아나운서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1992년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의 진행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93년부터는 가요톱10의 진행자로도 오랫동안 활약하며 1990년대 KBS의 간판 예능 아나운서로 이름을 알렸다.
스포츠계의 대표적인 밀양손씨로는 손연재 전 리듬체조 선수와 손흥민 국가대표 축구선수 등이 꼽힌다. 가요계 밀양손씨로는 가수 손담비, 에이핑크 손나은, 트와이스 손채영 등이 대표적이다. 연기자 중에서는 손예진, 손현주, 손태영 등이 밀양손씨다. 정치계에서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대표적인 밀양손씨 인사다.
[이경엽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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