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축구협회장, 직접 나서 결자해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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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지나도 팬들 분노 사라지지 않는다
수긍할 수 있는 해명과 쇄신책 내놓아야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4-12 08:17:13

축구판이 어수선하기만 하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월드컵에 무려 10회 연속 출전한 대한민국 축구의 컨트롤 타워인 축구협회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을 벌였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흘만에 계획을 철회했다.

100명의 축구인들을 사면하는 과정에서 12년 전 승부조작에 연루됐던 48명의 선수를 슬그머니 집어넣은 것에 축구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것도 우루과이와의 A매치 평가전이 있던 날 기습적으로 사면을 단행하려 한 것이다. 모든 관심이 평가전에 쏠려 있는 틈을 노린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용감무쌍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축구협회(KFA)로부터 제출받은 사면 대상자 목록을 보면,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고도 사면 대상에 오른 축구인들은 65명이나 된다. 이들 중 48명은 승부조작 사건, 8명은 금전 비리 행위, 5명은 선수·심판에 대한 폭력, 4명은 실기테스트 부정행위로 제명 징계를 받았다. 무기한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던 14명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아울러 지난해에 처분을 받아 징계 기간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8명에 대해서도 사면이 적용됐다.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들을 어떻게 아우렀는지 의문스럽다.

축구계는 물론 체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2011년 프로축구 승부 조작 사건이다. 유명 선수들 일부가 금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져 팬들은 충격에 빠졌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당시 K리그 현장을 취재했던 필자는 “어찌 이런 일이…” 라며 분노했고, 축구판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예상대로 후폭풍은 거세게 불어닥쳤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했던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까지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고 승부 조작에 가담했던 선수 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던 비극적 사건이었다. 잊을 수 없는 참극이었다.

공정이 최대 생명인 스포츠 정신의 근간을 흔드는 수치스러운 사건에 “축구의 기본 정신을 저해하는 모든 암적인 존재는 도려내야 한다”며 당시 프로축구연맹 정몽규 총재가 머리 숙여 사과하기도 했다. 정 총재는 이제는 축구행정을 총괄하는 대한축구협회 수장으로 활약한 지가 올해로 10년째다.

▲ 지난달 31일 고개 숙여 사과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연합뉴스)

2011년은 대한민국 축구사에 최악의 흑역사를 남긴 해였다.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승부 조작에 관여했던 이들은 과연 반성했을까. 반성 여부를 떠나서 이번 조치는 축구판에서 제 아무리 중죄를 저질러도 ‘안 걸리면 장땡, 걸려도 10년만 버티면 사면’이라는 선례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팬들도 용서하지 않았던 승부 조작 사건을 축구협회가 제멋대로 용서할 수 있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진출·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 화합 및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게 그 명분이다. 한국 축구를 구렁텅이에 빠뜨려 망쳐 놓은 범죄자들과 월드컵 16강 진출은 무슨 상관일까. 이들 사면을 밀실에서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는 이유다. 결국 여론을 무시한 채 정 회장을 포함한 축구협회 수뇌부들끼리 꼼수를 부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면 파동의 후폭풍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종이에 적힌 사과문을 읽은 뒤 숨어 버렸다.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파동의 답은 침묵과 도피가 아니다. 더구나 전대미문의 이번 파동으로 부회장단과 이사진이 모두 사표를 내고 축구협회를 떠나 버렸지만 그것이 수습책이 될 수는 없다. 이 과정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기세다.

재벌 2세 출신으로 고개를 꼿꼿이 세우며 살아 온 정 회장이 과연 허리를 숙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 회장은 개인적으로 회복이 어려운 치명타를 입은 만큼 거취를 결정하든지 아니면 진정성있는 사과로 ‘한국 축구 구하기’에 나서야 한다. 그게 한국축구와 협회는 물론 정 회장 본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정 회장이 나서지 않으면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면을 하게 된 경위와 이유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게 축구계와 팬들이 원하는 바다.

시간이 지나면 사면 논란은 조금씩 누그러지겠지만 그렇다고 팬들의 분노와 그 앙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지금이라도 정 회장은 팬들 앞에 나서 다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자초지종을 진솔하게 해명하는 동시에 수긍할 수 있는 쇄신책을 겸허하게 내놓아야 한다.

사면 대상자 징계 사유까지 공개됐지만 정 회장은 여전히 불통(不通)과 고자세다. 축구협회 행정이 이렇게 엉망일진대 한국 축구의 월드컵 16강은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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